[And 건강] 집에 있는 혈압계 절반 검증 안돼… 재는 사람 10명중 4명뿐

입력 2024-12-10 00:41 수정 2024-12-10 15:10
고혈압 환자의 심·뇌혈관질환 합병증 예방을 위해선 가정 혈압 측정과 생활 습관 관리가 중요하다. 대한고혈압학회는 검증된 혈압계 사용을 권고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대한고혈압학회가 최근 공개한 2024 팩트시트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내 20세 이상의 30.1%인 약 1300만명이 고혈압을 가진 것으로 추정됐다. 남성 720만명, 여성 580만명, 65세 이상은 580만명이 고혈압에 해당됐다. 20·30대 고혈압 환자도 89만명에 달한다. 고혈압은 별다른 증상이 없지만 심근경색 협심증 뇌졸중 등의 주요 위험요인으로 ‘침묵의 살인자’라 불린다. 그만큼 평소 꾸준한 혈압 관리가 중요하다.

하지만 국내 고혈압 환자의 목표 혈압 조절률(140/90㎜Hg 미만)은 58.6%에 그친다. 20·30대는 33%로 더 낮다. 보건당국과 고혈압학회는 특히 집에서 간편하고 정확하게 측정하는 ‘가정 혈압’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고혈압학회는 “가정 혈압 측정은 고혈압약 치료를 받는 환자의 조절 상태를 정확히 알 수 있어 환자의 치료 지속성 및 적극성, 혈압 조절률을 높일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 최신 유럽심장학회 연례학술대회(ESC2024) 가이드라인을 포함한 현재의 임상 지침은 검증된 혈압 모니터링 기기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국내 연구에서 가정용 혈압 측정을 하는 고혈압 환자는 절반에도 못 미치고 가정 혈압 측정을 하더라도 절반 이상이 검증되지 않는 혈압계를 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고혈압 관리의 개선을 위해 정확한 가정 혈압 모니터링에 대한 환자 교육과 함께 검증된 측정기의 공공 접근성 확대가 시급히 요구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정 혈압, 합병증 발생에 더 민감

혈압은 운동하거나 긴장할 때는 오르고 쉬거나 잘 때는 떨어지는 것이 정상이다. 이 때문에 무작위로 한 번 측정한 혈압이 한 사람의 혈압을 대변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근래 병원에서 측정하는 진료실 혈압 외에도 가정 혈압과 활동 혈압 등 더 많은 혈압값을 갖고 고혈압을 진단하는 추세다. 활동 혈압은 24시간 혈압계를 착용하고 주기적으로 혈압을 재는 것으로 가장 정확하다. 다만 혈압계를 온종일 차고 있어야 하는 불편이 따른다. 가정 혈압은 자동화된 혈압계를 집에 비치하고 환자 스스로 자주 측정하는 것이다.

분당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강시혁 교수는 9일 “특히 가정 혈압은 진료실 혈압과 비교해 심혈관질환 발생률과 사망 위험, 주요 장기 손상 등을 예민하게 반영한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면서 “몇 달에 한 번 측정하는 진료실 혈압보다는 가정 혈압이 더 정확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가정 혈압은 진료실에만 가면 혈압이 높게 나오는 ‘백의(白衣) 고혈압’과 반대로, 진료에선 정상인데 집에서 재면 높게 측정되는 ‘가면(假面) 고혈압’을 찾는 데도 도움 된다. 스페인의 한 연구에 의하면 가면 고혈압 환자는 사망 위험이 2.83배, 백의 고혈압 환자는 1.79배 높게 나타났다. 강 교수는 “백의 고혈압 환자들은 진료실 혈압이 높아 약을 처방받았다가 혈압이 너무 떨어져서 힘들어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또 가면 고혈압 환자들은 혈압이 높은 줄 모르고 지내다가 뒤늦게 발견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정 혈압 측정, 40% 그쳐


가정 혈압 측정의 중요성이 강조됨에도 국내 실천율은 낮은 게 현실이다. 동국대의대 심장내과 이무용 교수팀이 고혈압 환자 673명 대상으로 최근 진행한 연구를 보면 가정 혈압계를 가진 환자는 50%가량이며 집에서 실제 혈압을 측정하는 비율은 40%에 그쳤다. 가정 혈압을 재는 이들 중에서도 올바로 측정하는 비율은 27%에 불과했다. 일본의 경우 고혈압 환자의 77%, 정상 혈압 건강인의 41%가 가정 혈압계를 가진 것과는 비교된다.

더구나 가정 혈압계 사용자의 절반 이상은 검증되지 않은 기기를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려대구로병원 순환기내과 이지은 교수가 2022~2024년 스마트폰 앱에 자신의 가정 혈압과 혈압계 모델을 입력한 고혈압 환자 2731명을 분석해 지난달 고혈압학회 추계학술대회에 발표한 결과를 보면 전체의 46%(1255명)만이 검증된 가정 혈압계를 사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10명 중 5명 이상이 미검증 혈압계를 쓰고 있음을 시사한다. 검증된 제품 여부는 혈압 측정 기기 표준화와 검증을 목표로 하는 국제 조직(STRIDE BP)의 기준이 적용됐다.

이에 대해 학계에선 혈압계의 낮은 의료기기 등급에서 비롯된 문제로 보고 있다. 혈압계는 인체에 잠재적 위험성이 낮은 2등급 의료기기로 분류된다. 그러다 보니 의사 처방없이 약국, 인터넷을 통해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반면 낮은 등급으로 인해 규제 기관은 안전하다는 것만 확인되면 인증을 내주고 혈압계의 정확도는 평가하지 않는다.

강시혁 교수는 “진료실 혈압보다 가정 혈압이 더 중요하고 가정 혈압 수치에 따라 치료 방침이 바뀔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의사 입장에선 식약처가 혈압계의 정확도도 인증 기준으로 삼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가정용 전자 혈압계의 경우에도 국제 표준과 동일한 수준으로 식약처 지정 시험검사기관에서 정확도를 시험해 인증하고 있다”며 “향후 소비자가 인증받은 혈압계를 사용하도록 적극 홍보하겠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또 “학회에서 혈압계 제조사들에 정확도를 검증하는 연구를 수행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며 정확도 검증을 위한 최소한의 환자 숫자와 측정 조건, 오차 범위 등을 제시하고 검증된 혈압계 목록은 국제 공인 웹사이트(dableducational.org)에 수시로 업데이트하고 있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다 보니 엄격한 기준에 따라 연구를 수행할지는 회사 결정에 달려 있다”고 부연했다.

또 소비자들이 혈압계 검증 여부 관련 정보에 접근하기 쉽지 않은 점도 검증된 장비 사용률이 낮은 데 한몫한다. 웹사이트에 게시된 정보들이 사용자 편의성에 대한 것들만 있고 정확도를 검증한 내용 관련해선 대부분 기재하지 않거나 한 줄로만 제시되는 실정이다. 강 교수는 “검증되지 않은 혈압계는 정확도와 재현성이 확인되지 않은 기기다. 가정 혈압 측정은 검증된 혈압계를 이용해 올바른 방법으로 집에서 자주 측정할 것을 권고한다”고 강조했다.

혈압계는 윗팔형, 손목형, 반지형 등 다양하게 나와 있다. 정확도로 따지면 윗팔(팔뚝형) 혈압계가 가장 정확하다. 심장에서 멀어질수록 혈압의 양상이 변하게 되는데, 윗팔 동맥은 비교적 심장에 가깝기 때문이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