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희의 인사이트] 폭력은 민주주의를 이기지 못한다

입력 2024-12-10 00:38

국민 공포로 몰고 국회 겁박한
비상계엄 대통령 당장 내려와야

교계 집회 후 재갈 물리는 편협
비판 눈감으면 독선으로 흘러

더디더라도 상대방 설득하며
한 발씩 내딛는 게 민주주의다

지난 3일 밤 10시30분쯤 집에 들어온 아들이 비상계엄이 발표됐다고 얘기했을 때 북한군의 도발이 있는 줄 알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평화로운 일상에 비상계엄이라니 황당했다. 당장 일상에 미칠 불편들이 공포로 엄습했고 군대에 가 있는 조카들이 걱정됐다. 비상계엄령이 내려진 것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령 이후 44년 만이다. 무장한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에 진입했고, 일부 정치 인사들을 체포해 구금하려 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영화 ‘서울의 봄’ 얘기가 아니다. 실화다. 어떻게 얻어낸 민주주의인가. 군부독재에 맞서 목숨을 잃어가며 쟁취한 민주주의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내린 이유도 어처구니가 없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야당이 지금까지 시도한 22건의 탄핵 추진과 내년도 예산안 단독 삭감 때문이란다. 거야 정국에서 식물 대통령으로 옴짝달싹 못하는 분풀이를 국민들을 공포 속에 몰아넣고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겁박하며 비상계엄으로 풀려고 한 것이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강직한 이미지로 대선에 소환돼 최고 권력에 오르고 청와대 구중궁궐에서 나와 국민과 소통하겠다며 용산으로 집무실을 옮긴 대통령의 말로를 우리는 참담하게 목도하고 있다. 공정과 상식, 법치와 정의를 외치던 대통령은 폭주기관차가 돼 독주하다 몰락을 자초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검찰은 윤 대통령을 내란 혐의 피의자로 입건해 수사하고 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다. 무소불위 권력의 단맛에 취해 독선을 일삼다 실패한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의 전철을 그도 똑같이 밟아가고 있다.

사법부 심판을 피하기 위해 체급도 안 되는 지역구 의원이 됐다가 당대표를 꿰차고 개인 사당을 만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나 당대표의 범죄와 비리에 눈감고 숫자의 힘으로 국정 운영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거대 야당의 어깃장도 집단폭력이다. 20대 대선이 끝난 지 2년9개월이 지났는데도 여야는 선거전을 계속 치르는 것처럼 싸움만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폭력으로 해결할 일은 아니다. 국민에게 총을 겨누는 대통령이라니. 윤 대통령은 반세기 걸려 어렵게 일궈낸 민주주의를 능멸하며 국격을 추락시켰다. 민심은 대통령의 자충수에 싸늘하게 돌아섰다. ‘질서 있는 퇴진’ 운운은 걷어치워라. 국민은 불안하다. 하루라도 빨리 자리에서 물러나 죗값을 치르는 게 마땅하다. 한국 정치사에서 타협과 협치가 실종된 것은 불행한 일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도 집권 내내 대선 보복과 편 가르기 전쟁에 5년을 허비하다 탄핵을 당하거나 본인이나 측근이 감옥에 가는 악순환을 되풀이하고 있다.

빈민구제와 의료, 교육 등에 앞장서며 복음을 전했던 개화기 초기 기독교와 달리 요즘 한국교회가 배타적·이기적·세속적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받는 것도 비민주적인 행태와 무관하지 않다.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을 보듬고 설득해야 하지만 일부 목회자들은 너무 편협하고 폭력적이다. 생각이나 관점이 다른 상대방에 대한 겁박이나 인격살인을 통해 획일화하려 하는 시도를 자주 목도한다. 진영 논리에 빠져 삿대질을 해대는 정치권과 별반 다르지 않다.

최근 교계의 동성애 반대집회 이후 한 기독 방송사는 유튜브에서 행사 주최 측 목회자로부터 공격을 받아 광고 매출이 급감하는 등 곤혹을 겪고 있고, 행사를 취소하라고 성명서를 냈던 기독시민단체는 교회들로부터 후원이 끊겼다고 한다. 반대 의견을 무시하고 내 방식만 옳다고 상대방에게 재갈을 물리는 것은 폭력이다. 비판에 눈 감고 달콤한 감언이설에만 귀를 연다면 독선으로 흐르기 쉽다.

얼마 전 만난 한 전직 관료는 성선설을 믿었는데 그 믿음이 지금은 반대가 됐다며 기독교에서 얘기하는 대로 사람이 악한 천성을 갖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인간 안에 내재된 악을 처절히 느끼고 있다고 했다. 그는 통념과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이 세상이 답답하고 억울해 새벽기도를 나가고 있다고도 했다.

예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이다. 예수는 가장 낮은 말구유로 오셔서 우리 죄를 대속해 십자가에 달리고 다시 부활하셨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이사야 41장 10절) 나라가 어지러운 이 시기, 기독교인들마저 서로 물어뜯는 혼탁한 이 시대, 인생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다.

이명희 논설위원·종교전문기자 mh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