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경주 (6) 골프는 자신과의 싸움… 죽기 살기로 운동에만 매달려

입력 2024-12-10 03:03
최경주 장로가 고교시절 처음으로 간 광주 공군 광주체력단련장 내에 있는 골프장. 해병닷컴 캡처

운동 외에 다른 길이 없었던 나는 죽기 살기로 했다. 친구들은 장난을 치거나 꾀를 부리며 쉬엄쉬엄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사부가 시키는 훈련은 무조건 다 마쳤다. 남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다. 친구들이 노는 걸 보면서 이따금 흔들렸던 건 사실이다. 잭 니클라우스 책을 달달 외우다시피 했던 나는, 골프는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다.

완도 옆 신지도에는 명사십리해수욕장이 있다. 파도에 밀려나는 모래 소리가 십리 밖까지 들린다고 해서 ‘명사십리’다. 지금은 산지대교가 있어 완도읍에서 차로 20여분이면 갈 수 있지만 옛날에는 배를 타고 가야 했다. 골프장에 갈 수 없어서 대체할 수 있는 장소를 찾다가 명사십리가 생각났다.

명사십리는 바닷바람이 불어 생긴 모래구덩이가 많았다. ‘벙커샷’을 연습하는데 최적의 장소였다. 이곳의 모래는 아주 곱고 부드럽지만 썰물 때가 되면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해진다. 하루에 서너 편 뜨는 배를 타고 가서 두세 시간 후에 다음 배가 들어올 때까지 연습을 하고는 했다. 뱃고동 소리가 들리면 3~4㎞ 거리를 공을 주우면서 항구로 갔다. 이렇게 훈련한 덕분에 바람과 벙커를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내 벙커샷만큼은 부러워한다.

명사십리가 골퍼에게 좋은 연습 장소인 또 다른 이유는 클럽의 비거리를 정확하게 잴 수 있다는 점이다. 골퍼에게 있어 상황에 알맞은 클럽을 선택하는 건 경기를 좌지우지할 만큼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수시로 변하는 환경을 보면 자연이 훈련 코스를 짜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모래가 곱고 부드럽다가도 탄탄해져서 페어웨이와 같은 감각을 느낄 수 있다.

칩샷과 퍼팅 연습도 할 수 있다. 모래 언덕은 그린과 같아서 다양한 코스를 도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또 모래 위에서 샷을 하면 디봇이 생겨서 스윙의 궤도를 알 수 있다.

프로 골퍼는 자기 클럽이 상황에 따라 낼 수 있는 비거리가 얼마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클럽의 비거리가 내는 오차 범위를 최대한 좁히는 사람이 최고가 될 수 있다. 나는 후배들에게 조언할 때 샷 연습은 잔디보다는 맨땅에서 하는 게 좋고, 맨땅보다는 모래사장에서 하는 게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명사십리에서 하는 게 최고다.

처음으로 필드를 밟은 건 골프에 입문한 지 4개월이 지나서였다. 광주 송정리에 있는 9홀짜리 공군부대 골프장이었다. 처음 필드에 나가기 전날 밤, 그린 구경은 해본 적도 없는 나는 너무 설레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완도에서 광주까지 차를 여러 번 갈아타고 나서야 공군부대에 도착했다. 부대 내 시설이라 민간인이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었다. 정문에서 예약 확인 후 군용 트럭을 타고 이동해야 했다.

꿈에 그리던 순간이었다. 골프 가방을 품에 꼭 안고 잔뜩 긴장한 채 짐칸에 올라탔다. 필드가 가까워져 오자 초록색으로 뒤덮인 잔디가 펼쳐졌다. 난생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트럭에서 내려 첫발을 딛자 폭신한 잔디가 우리를 맞이했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