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에게 막대한 자금을 지원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새로 출범하는 정부효율부의 공동 수장으로 임명됐다. 트럼프가 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을 개발했던 맨해튼 프로젝트에 비유한 정부효율부는 정부의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고 정부조직을 효율적으로 개편하기 위한 부서다. 6조8000억 달러에 이르는 미 정부지출 중 2조 달러를 줄이겠다는 머스크의 야심찬 계획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보다도 필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기업활동을 저해하는 과도한 규제완화를 통한 경제성장 촉진’을 정부효율부의 주요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머스크는 캘리포니아주의 많은 규제 때문에 테슬라 본사를 텍사스로 이전했다고 밝혔을 만큼 규제에 부정적이다. 기업인 출신 트럼프도 과거 대통령 시절 오바마 행정부에서 존재했던 규제의 30%를 없앤 점을 고려하면 규제완화는 앞으로 상당한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활발한 기업혁신과 치열한 시장경쟁을 바탕으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미국에서 규제완화가 새 정부의 주요 과제로 설정됐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래전부터 많은 연구들이 과도한 규제가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하기 때문이다. 지난 7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평가한 우리나라의 규제환경 순위를 살펴보면 전반적으로는 OECD 38개국 중 20위로 평균 수준이지만 정부개입에 의한 기업활동 왜곡이나 투자 진입장벽은 36위에 머무는 등 많은 부분에서 규제가 기업활동을 제약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월 발표된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자료에서는 조사 대상 2000여개 중소기업의 44%가 국내 규제환경 수준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으며 ‘유연한 규제환경 조성’과 ‘규제의 양적 감소’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연초 한국경영자총회 조사에서도 기업들이 정부에 가장 바라는 점으로 40%의 기업이 ‘정책 일관성 유지와 규제 불확실성 축소’와 ‘속도감 있는 규제완화 추진’을 들 만큼 기업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규제 체감도는 매우 높다.
전미경제연구소(NBER)에 따르면 규제는 기업혁신에 심각한 제약을 가한다. 기업규모가 커질수록 규제가 세금처럼 작용해 기업이익에 2.5%의 세금부과 효과를 초래하고 혁신을 약 5% 감소시킨다. 지난해 미 MIT대학은 프랑스의 경우 직원수가 50명이 넘으면 노동시장 규제가 대폭 강화됨에 따라 50명을 초과하는 지점에서 기업혁신이 정체된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중소기업이 자산 총액 5000억원을 넘겨 중견기업이 되면 규제가 3배 이상으로 늘어남에 따라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중소기업 지위를 유지하려는 피터팬 증후군이 기업의 발전과 혁신을 가로막는 상황이다.
국내 금융산업만 보더라도 규제가 혁신을 저해하거나 시장을 왜곡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금융회사 내부망과 외부망을 분리하는 규제는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를 활용한 혁신을 어렵게 하며 신용카드의 과도한 수수료 규제는 카드회사 사업구조의 왜곡 등을 초래하고 있다. 가상자산 수탁업에는 가장 공신력 있는 은행의 진출이 막혀 있어 규모와 활용도가 날로 급증하고 있는 가상자산시장의 혁신과 안정성 강화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소비자보호와 환경보호, 시장규율 정립 등을 위한 규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혁신을 가로막고 성장을 저해하는 과도하고 불필요한 규제는 줄여야 한다. 반도체부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반도체산업이 발전했다는 농담이 있었다. 갈수록 낮아지는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 제고를 위해 미국의 정부효율부 신설이 주는 의미를 곱씹어 봐야 할 때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