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학자들 “질서있는 퇴진론, 또 다른 위헌 행위에 가깝다”

입력 2024-12-09 00:30
시민들이 지난 7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지켜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정국 안정 방안을 당에 일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8일 발표한 윤석열 대통령 국정관여 배제 등 이른바 ‘질서 있는 퇴진론’에 대해 다수의 헌법학자들은 “또 다른 헌법 위반 행위에 가깝다”는 분석을 내놨다. “정국 안정 방안을 여당에 일임하겠다”는 윤 대통령 담화에 대해 ‘국정운영 권한까지 여당 대표에게 넘긴 것으로 볼 수 없고 헌법상 가능하지도 않다’는 견해가 우세했다. 한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가 섣부른 ‘2인 국정운영 체제’로 위헌 시비를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법적으로 윤 대통령이 있는 상황에선 권한을 누구도 대행할 수 없다”며 “(2인 국정운영 체제는) 지극히 반헌법적 국정 수습 방안”이라고 지적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 대표는 정당 대표로 행정부 권한이 전혀 없다”며 “당대표와 총리가 대통령 직무를 배제한다면 그것도 위헌 행위”라고 말했다.

헌법 71조는 대통령 궐위나 사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 순서로 권한을 대행하도록 정한다. 헌법학자들은 지금을 대통령 궐위 상황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석했다.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되거나 중대 질병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사고로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제 임기 포함 정국 안정 방안을 여당에 일임하겠다”고 했다.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임은 수습책을 마련해 오라는 것이고 어떤 방안을 선택할지 결정권은 여전히 대통령에게 있다는 의미”라며 “한 대표 등에게 국정운영 권한을 준 것으로 볼 수 없고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 총리가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한 대표 옆에서 대통령 2선 퇴진과 2인 국정운영 체제 구상을 밝힌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 권한을 국무총리가 수행하겠다면서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가 담화를 발표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며 “사적 결사체인 정당은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가 아니다”고 말했다.

소수이지만 정치적 수사로 볼 수 있다는 견해도 나왔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 대표 담화는 책임총리제를 염두에 둔 정치적 수사로 보인다”고 했다. 대통령의 권한과 책임을 국무총리가 실질적으로 분담토록 하는 책임총리제 방식이라면 현행 헌법 내에서 실현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외교와 국방까지 당대표와 총리가 맡겠다는 담화 내용을 책임총리제로 해석할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 헌법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는 “헌법 어디에도 대통령 권력의 임의적 이양을 허락하는 규정은 없다”며 “대통령이 사임하거나 탄핵 등으로 헌법이 예정한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하는 게 헌정질서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했다. 임 교수도 “책임총리는 내정 권한만 가지는 것”이라며 “당대표와 총리가 외교·국방 권한도 행사한다는 건 어느 나라 헌법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2인 국정운영’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한 대표는) 민주적 절차로 국정운영 권한을 위임받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총리와 함께 대통령을 대신하느냐”고 지적했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페이스북에 “대한민국 국민은 한 대표한테 국정을 맡긴 일이 없다”고 한 대표를 직격했다.

이형민 이종선 박민지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