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가입자가 기존 보유 상품을 팔지 않고 사업자만 바꿔 이전할 수 있는 ‘퇴직연금 실물이전(현물이전)’ 제도가 지난 10월 31일 시행된 가운데 증권사의 퇴직연금 적립금 잔액이 한 달 새 2.23% 증가했다. 특히 개인이 운용할 수 있는 계좌의 적립금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8일 국민일보가 집계한 국내 증권 4개사의 지난 4일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 잔액은 34조2120억원이다. 퇴직연금 현물이전 제도 시행일인 지난 10월 31일(33조4667억원) 대비 7453억원이 증가했다. 특히 개인형 퇴직연금(IRP)의 순유입액이 가장 두드러졌다. 10월 31일 9조7450억원에서 지난 4일 10조3078억원으로 5628억원 늘었다. 다만 퇴직연금 적립금 증감은 현물이전 효과 외에도 추가 납입이나 중도 인출 등에 따라 복합적인 영향을 받는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퇴직연금 실물이전 실적 현황을 보면 퇴직연금 적립금은 지난 10월 31일 179조1077억원에서 지난달 28일 180조8028억원으로 0.95% 늘었다. 전입과 전출 현황에 따르면 전체 퇴직연금의 약 60%를 차지하는 확정급여형(DB형)은 은행으로 순유입됐지만 개인 운용 계좌인 IRP와 확정기여형(DC형)은 순유출 흐름을 보였다.
퇴직연금 현물이전 시행 당시 이번 제도로 계좌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은행과 보험사 등에서 증권사로 이전이 증가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지난해 퇴직연금의 금융권역별 수익률을 보면 증권사가 7.11%로 가장 높았기 때문이다. 은행의 수익률은 4.87%, 손해보험 4.63%, 생명보험은 4.37%였다.
금융사들은 고객 유치를 위해 퇴직연금을 옮기는 고객을 대상으로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증권업계는 고객이 직접 투자할 수 있는 상품군의 다양성을 최대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주요 증권사의 경우 퇴직연금 계좌에서 투자할 수 있는 상장지수펀드(ETF) 수가 약 700개에 이른다. 이에 은행에서도 고객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올해까지 퇴직연금으로 투자 가능한 ETF 상품 수를 10~30개가량 늘릴 계획이다.
‘로보어드바이저(RA) 서비스’ 경쟁도 뜨겁다. 이는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주는 서비스다. 미래에셋증권의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는 성장형 성장추구형 위험중립형 안정추구형 안정형 5가지 투자유형의 포트폴리오를 제시한다. 동일 유형이라도 고객별 가입 시점, 매매 내역, 계좌잔고 현황에 따라 고객에게 다른 포트폴리오가 적용돼 맞춤형으로 자산 관리가 가능하다는 게 특징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올해 초 퇴직연금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인 ‘MY AI’를 선보였으며, 퇴직연금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my 연금’에 자체 개발한 로보어드바이저 키스라(KISRA)를 적용해 추천 포트폴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도 관련 업체들과 제휴를 맺고 AI 기술을 통한 투자 자문 서비스를 늘리고 있다.
장은현 기자 e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