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계엄 수사, 검경 주도권 다툼… 공수처는 ‘이첩’ 요구

입력 2024-12-09 00:41
박세현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장(서울고검장)이 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 관련한 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박 본부장은 “경찰이 합동 수사를 제안하면 언제든 응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권현구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를 놓고 검찰과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유례없는 주도권 싸움에 나섰다. 수사 주체를 둘러싼 수사기관 간 신경전 탓에 진상 규명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경찰은 8일 검찰과의 합동수사를 거부하고 독자수사 의지를 밝혔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은 입장문을 내고 “지난 6일 검찰로부터 수사 효율성 차원에서 합동수사 제안을 받은 사실이 있으나 거절했다”고 밝혔다. 수사단은 “법령상 내란죄는 경찰의 수사 관할인 만큼 경찰에서 책임감 있게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내란 혐의 수사는 경찰 소관이라는 것이다.

경찰은 기존 120여명의 전담 수사팀에 중대범죄수사과, 범죄정보과 수사관을 추가해 총 150여명으로 수사단을 확대 운영키로 하는 등 독자수사 기조를 본격화했다.

반면 검찰은 직접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이번 수사 대상에 경찰 수뇌부가 대거 포함된 점을 거론하며 경찰을 견제했다. 박세현 검찰 특별수사본부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이번 사건 관련자가 군과 경찰”이라며 “경찰과 관련된 분들은 주로 경찰이 수사하고 있는데 그 또한 혐의가 있다면 검찰에 송치돼야 한다”고 말했다. 비상계엄 당시 국회 출입을 통제한 혐의로 수사선상에 오른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서울경찰청장 등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한 검찰 간부는 “현직 대통령 수사는 결단이 필요한 문제이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내란죄 법리를 적용하는 것도 매우 까다로운 사안”이라며 “대형 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이 아니면 사안을 돌파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과 경찰 간 기싸움에 공수처까지 가세했다. 공수처는 검찰과 경찰을 향해 비상계엄 선포 사건 이첩을 공식 요청했다. 공수처는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직후부터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꾸렸고, 김 전 장관 등에 대한 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다. 다만 법원은 영장이 중복 청구됐다는 이유로 이를 기각했다. 공수처는 “법원이 수사의 효율 등을 고려해 각 수사기관 간 협의를 거쳐 (수사가) 중복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 달라고 요구했다”며 이첩 요청 배경을 설명했다.

공수처법 24조 1항은 검경이 공수처와 중복된 수사를 할 경우 공수처장이 사건 이첩을 요청할 수 있으며, 해당 수사기관은 이에 응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공수처의 사건 이첩 요청권을 검찰이나 경찰이 거부할 수 없다는 의미다. 경찰은 공수처의 요청을 접수한 뒤 법리 검토에 돌입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의 수사권 조정안 입법 및 공수처 도입 이후 수사 주체를 둘러싼 혼선이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이 직무정지 상황인데다 상위 기관에 의한 수사 조율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혼선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신재희 이형민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