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발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원화 가치가 추가로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외환 전문가들은 1400원대 초반에 잡았던 원·달러 환율 상단을 1450원까지 높인 상태다.
8일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 한 주간 원·달러 환율은 24.5원 뛰어올랐다. 주간 기준 지난 1월 15~19일(25.5원) 이후 약 11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이다. 12·3 비상계엄 선포 당일엔 환율이 야간 거래에서 1442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2022년 10월 이후 2년여 만에 최고치다. 계엄 해제 후 다시 안정을 되찾았지만 이는 외환 당국의 개입 영향으로 분석된다.
원·달러 환율이 상승한 만큼 원화 가치는 주요국 통화 중 가장 큰 폭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지난주 원화가 달러 대비 1.86% 평가 절하된 반면 유로화(+0.03%), 엔화(+0.10%), 파운드화(+0.26%), 대만달러(+0.51%) 등은 달러 대비 강세를 나타냈다. 위안화(-0.36%), 호주달러(-1.32%) 등은 달러 대비 약세였지만 원화보다는 절하 폭이 크지 않았다.
문제는 외환 당국의 개입에도 환율 변동성이 커져만 간다는 것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의 아다르쉬 신하 아시아 금리 및 외환 전략 공동 책임자는 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탄핵 불발로 불확실성이 더 오랜 기간 지속될 것”이라며 “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계엄 사태 이후 “특별한 충격이 없다면 환율이 천천히 내려갈 것”이라는 외환 당국의 낙관적 전망과는 대조적이다.
시장에서도 환율이 1450원대를 돌파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서정훈 하나은행 수석연구위원은 “이번 사태로 원·달러 환율은 1450원까지 상단을 열어놔도 무방한 레벨이 됐다. 사태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연구원도 “이번 사태만으로 환율이 올랐다고 단정 짓긴 어렵지만 우리도 사태 전과 비교했을 때 환율 상단을 1435원으로 10원 정도 높였다”고 말했다.
환율 변동성 확대에 따라 외환 당국의 실개입이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11월 기준 외환보유액은 4153억9000만 달러다. 전월 대비 3억 달러 감소했으나 개입 여력은 여전히 충분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향후 몇 달 동안 외환보유액이 4000억 달러 밑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 위원은 “환율이 1350원대로 들어섰을 때부터 (당국이) 어느 정도 조금씩 매도 개입을 했다”며 “(정치 불안이) 장기화하면 외환보유액은 줄어드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에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이날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과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를 열고 9일부터 국내외 투자자와 소통해 정부의 시장안정 의지를 공유하기로 했다.
황인호 구정하 김윤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