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에서 비상계엄 사태 후폭풍을 수습하기 위한 백가쟁명식 해법이 제시되고 있다. 임기 단축 개헌, 책임총리제, 거국내각 등이 돌파구로 거론된다. 문제는 이런 해법들의 공통분모가 국민적 공감과 여야 합의라는 점이다. 정치권에서는 여당이 지난 7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집단 불참한 여파로 야당의 협조를 기대하긴 더욱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이 정국 주도권을 완전히 틀어쥔 상황에서 여권의 ‘시간 벌기’식 전략에 응할 이유가 없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8일 통화에서 “윤 대통령 임기 단축은 이미 확정적이고, 혼란을 최소화할 ‘질서 있는 퇴진’ 방식이 무엇인지가 고민 지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부에선 이대로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에게 정권을 고스란히 넘겨줄 수밖에 없다는 게 가장 큰 걱정거리”라고 토로했다.
우선 검토되는 해법은 책임총리제다. 책임총리는 헌법이 국무총리에게 보장한 행정각부 통할권,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에 대한 부서(서명)제도, 국무위원 제청·해임건의권 등을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는 취지인데, 법적 제도로서 존재하는 건 아니다. 박상수 국민의힘 대변인은 페이스북에서 국민의정부 때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총리의 ‘DJP 연합’을 책임총리제 사례로 들며 “부서권 등을 고리로 책임총리가 운영되고 대통령은 직무 대부분에서 손을 뗀다면 탄핵이란 혼란스러운 방법 없이 질서 있고 평화로운 임기 단축과 개헌을 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한덕수 현 국무총리가 사실상 책임총리로 역할을 하면서 국정을 수습하는 방안도 제시된다. 그러나 민주당은 책임총리에 대해 “위헌적·무정부적 발상”이라는 입장이다. 한 총리를 겨냥해서는 “내란의 즉각적 수사 대상”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 총리 역시 지난 3일 비상계엄 관련 국무회의 참석자라는 것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도 “윤 대통령이 말로는 ‘2선 후퇴’한다고 했지만 법적 권한이 그대로인 상황”이라고 선을 그었다.
임기 단축 개헌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4년 중임제를 도입하면서 윤 대통령 임기를 대폭 단축하고, ‘원포인트’ 개헌도 동반 추진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그러나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개헌의 대전제는 여야 합의인데,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 해소가 시급한 민주당이 응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연구관 출신 노희범 변호사도 MBC라디오에서 “이런 비상적 상황에서 개헌 추진은 정치적 혼란을 더 가중시킬 것”이라고 했다.
국민투표법이 2014년 7월 재외국민 투표권 보장 규정의 미비를 이유로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상태라 법 개정 없이는 개헌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현행 규정으로는 국민투표 실시가 불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거국중립내각 역시 한계가 뚜렷하다는 평가다. 이는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해 여야가 공동으로 총리 등 내각을 구성하는 방안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5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사례가 있다. 장 교수는 이에 대해 “여야가 공히 합의할 수 있는 제3의 인물이 아니라면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
여권 내부에서는 ‘조기 대선론’도 분출하고 있다. 4선 김태호 의원은 “질서 있는 퇴진의 유일한 방법은 탄핵보다 빠른 조기 대선이다. 답은 ‘벚꽃대선’”이라고 주장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