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한글성경, 다음세대 언어로 복음을 풀어쓰다

입력 2024-12-09 03:03 수정 2024-12-09 16:30

“한 아이가 우리를 위해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통치권이 그분의 어깨 위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지어서 부르는 그분의 이름은 놀라우신 책략가, 용맹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아버지, 평화의 으뜸 군주이십니다.”(사 9:6·새한글성경) 대한성서공회(이사장 김경원 목사)가 최근 완간한 ‘새한글성경’의 번역이다.

대한성서공회는 지난 6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교회(이상학 목사)에서 새한글성경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어 어법에 어긋나지 않는 한 새롭고 참신한 용어와 방식을 사용하되, 성경으로서 원문에 최대한 충실한 번역이 되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어 “원문의 어순과 어원까지 고려하여 직역하되 원문의 문학 갈래와 맥락에 맞추어 생동감 있는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새한글성경은 다음세대를 위한 공인역 성경으로 12년간 각 교단 성서학자 36명과 국어학자 3명이 여러 단계를 거쳐 번역을 완료했다. 2021년 11월 ‘새한글성경 신약과 시편’을 먼저 발행해 독자들의 의견을 받았고 10일 구약을 합쳐 완역본으로 출간한다.

새한글성경은 다음세대와의 소통을 위해 설계됐다. 스마트폰에서 읽기에 적합하도록 긴 문장을 짧게 나눴다. 기존의 긴 문장을 간결하게 하면서 독자가 성경 본문의 메시지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예수님의 말투도 상황에 맞게 바뀐다. 병자나 고통받는 이들에게는 친근한 반말(해요체)을, 군중과 제자들에게는 존칭(하십시오체)을 쓰는 것으로 번역했다. 예를 들어 혈루증을 앓던 여인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경우 “힘내세요 따님! 그대의 믿음이 그대를 구원했어요”(마 9:22)로 번역했다.

반면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이렇게 번역했다. “복 있습니다, 영이 가난한 사람들은!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니까요.”(마 5:3) 이 같은 변화는 예수님의 메시지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대화 상대에 따라 세심하게 조정됐다는 점을 보여준다.

장애와 질병 관련 용어도 세심하게 수정했다. 나병(癩病)으로 번역됐던 표현은 ‘심한 피부병’으로, 다리 저는 사람은 ‘지체장애인’으로 바꿨다. 전문 용어와 지명, 인명도 대폭 손질했다. 유월절은 ‘넘는 명절’, 무교절은 ‘누룩없는 명절’, 번제는 ‘다 태우는 제사’, 지성소는 ‘거룩 거룩한 곳’으로 번역했다.

또 애굽은 ‘이집트’, 바로는 ‘파라오’, 블레셋은 ‘필리스티아’, 구스는 ‘에티오피아’, 다메섹은 ‘다마스쿠스’, 고레스는 ‘키루스’ 등으로 번역했다. 도량형(무게 길이 부피 등)도 현대 한국어 사용자가 익숙한 표현으로 바꿨다. 삼백규빗을 ‘150미터’로, 오리쯤을 ‘3킬로미터’, 기름 백말을 ‘올리브기름 2200리터’ 등으로 번역했다.

독자들에게 존중과 공감을 전하려는 번역 철학도 담았다. 국립국어원장을 지낸 민현식 서울대 명예교수(새한글성경 국어자문위원)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라는 마태복음 28장 19절을 언급하면서 “성령을 물건처럼 취급하지 않도록 존경의 뜻을 담아 번역했다”고 설명했다.

박동현 장로회신학대 은퇴교수(새한글성경 구약 책임번역자)는 “새한글성경은 멀티미디어 시대 21세기 한국어 사용자를 위해 번역한 성경”이라며 “한국어 사용자에는 재외동포와 북한동포, 외국인으로서 한국어를 구사하고 읽는 사람, 그리고 21세기 청소년이 그 중심에 있다”고 밝혔다.

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