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첫 소설부터 내 모든 질문은 사랑을 향해”

입력 2024-12-09 03:15
소설가 한강이 7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한림원에서 ‘빛과 실’이란 제목으로 강연하고 있다. 한국시간으로 8일 새벽 1시부터 1시간여 동안 한국어로 진행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은 노벨위원회 유튜브를 통해 전세계에 생중계됐다. AP연합뉴스

“필멸하는 존재로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돼 줬고, 연결돼 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소설가 한강이 7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한림원에서 열린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빛과 실’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작품 세계를 회고했다.

한강은 여덟 살이던 1979년 4월에 쓴 ‘천진하고 서툰’ 시로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시에서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金)실이지.”라고 말했다.

“장편소설을 쓰는 일에는 특별한 매혹이 있었다”는 그는 “완성까지 아무리 짧아도 1년, 길게는 7년까지 걸리는 장편소설은 내 개인적 삶의 상당한 기간들과 맞바꿈된다. 바로 그 점이 나는 좋았다”고 설명했다.

한강은 작품을 쓰면서 천착했던 질문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채식주의자’(2007)에선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물었다. ‘바람이 분다, 가라’(2010)에선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희랍어 시간’(2011)에선 “우리가 정말로 이 세계에서 살아나가야 한다면, 어떤 지점에서 그것이 가능한가”를 고민했다.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을 복원한 ‘소년이 온다’(2014)에서 질문은 이어졌다. 광주가 고향인 그는 “열두 살 때 서가에 거꾸로 꽂힌 ‘광주 사진첩’을 우연히 발견해 읽었다”며 “인간성의 가장 어두운 부분들을 지속적으로 접하며, 오래전에 금이 갔다고 생각했던 인간성에 대한 믿음이 마저 깨어지고 부서지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한강은 제주 4·3 사건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2021)에서 주인공 인선의 어머니 정심을 통해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한강은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라는 두 개의 질문 사이의 긴장과 내적 투쟁이 내 글쓰기를 밀고 온 동력이었다고 오랫동안 믿어왔다”고 밝혔다. 이어 “이삼 년 전부터 그 생각을 의심하게 됐다.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라고 말하며 그는 강연을 마쳤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