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명령 불복종

입력 2024-12-09 00:40

“솔직히 국회가 제대로 봉쇄됐다면 비상계엄 해제요구가 가능했겠나. 국회 권한을 막으려고 마음먹었다면 충분히 할 수 있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지난 5일 국회 발언은 듣는 이들을 놀라게 했다. 국회 봉쇄를 ‘대통령 마음 먹기에 달린 일’ 정도로 치부한 이 장관의 답변은 야당 의원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윤석열 대통령의 충암고 후배이자 핵심 측근인 이 장관은 더불어민주당이 자신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자 어제 자진사퇴했다.

이 장관은 국회 봉쇄 실패를 마치 계엄군이 수위를 조절한 것처럼 꿰맞추려 했으나 실상은 달랐다. 비상계엄이 무위로 돌아간 배경에는 군인들의 교묘한 명령 불복종이 있었다. 곽종근 특전사령관은 휘하 병력을 출동시키면서도 실탄을 병사들에게 지급하지 말고 현장 지휘관들이 통제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곽 사령관은 또다른 충암고 출신인 김용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본회의장 안에서는 “무장군인들이 전력을 차단하면서 침투할 것이다”라는 아우성이 높았지만 국회가 암전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유혈충돌도 없었다.

계엄군뿐 아니었다. 홍장원 국가정보원 1차장은 비상계엄 발동 직후‘방첩사령부의 정치인 체포를 도우라’는 윤 대통령의 지시를 거부했다. 홍 차장은 충암고 출신 여인형 방첩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우원식 국회의장,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 구체적인 체포대상을 전달받자 ‘미친 놈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메모를 중단했다고 한다. 홍 차장은 민간인이지만 여 사령관의 육사 5년 선배다.

윤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로서 어떤 명령을 내리더라도 모든 군인이 일사불란하게 자신을 따를 것으로 착각했다. 고교 동문 몇 사람만 믿고 비상계엄을 발동한 윤 대통령의 리더십을 다른 군 지휘관들과 정보기관 간부들은 거부했다. 윤 대통령의 권위는 비상계엄 초기부터 무너졌다. 웃픈 현실이다.

전석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