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의 글로벌 기업 탐구] 파격적 비전과 치밀한 전략의 리더… 괴짜 머스크의 ‘진면목’

입력 2024-12-10 00:32

Zip2 페이팔 스페이스X 오픈AI 등
창업하는 기업마다 비전·전략 제시
전기차 대중화, 화성 개척 향해 전진
근시안적 성과주의 우리 기업에 교훈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괴짜 이미지가 강하다. 자신을 아이언맨과 동일시하고, 출산율 감소가 인류에 가장 큰 위협이라며 10명이 넘는 자녀를 뒀다. 최근에는 역대 최대 기부금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도와 정치 실세로 권력을 휘두르는 등 일반적 경영자와 전혀 다른 행태를 보여 왔다. 그런데 이런 이미지에 가려져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탁월한 비전과 전략을 가진 출중한 ‘CEO 머스크’다.

다양한 혁신적 기업 끊임없이 창업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현실적 제약 조건에 맞춰 비전을 세우지 않고, 꿈 같은 미래 비전을 먼저 제시한 후 이를 실현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로이터연합뉴스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미국 시민인 머스크는 어릴 때부터 컴퓨터와 독서광이었다. 초등학교 때 비디오게임 프로그램을 짤 정도였다. 펜실베이니아대, 스탠퍼드대 등에서 공부하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의 엄청난 잠재력에 매료된 머스크는 실리콘밸리로 건너가 다양한 혁신적 기업을 끊임없이 창업했다. 특정 사업에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새로운 기업을 창업하는 시리얼 앙트레프레너(serial entrepreneur), 즉 연쇄적 창업가다.

머스크는 1995년 인터넷을 기반으로 언론매체에 지역정보를 제공하는 Zip2를 창업했다. 1999년 이를 매각해 확보한 자금으로 온라인 금융서비스 회사 X.com을 세웠다. 2000년에는 X.com의 경쟁사 콘피니티를 인수했고, 2001년 콘피니티의 온라인 결제서비스를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해 회사 이름을 페이팔로 바꿨다. 2002년 페이팔을 이베이에 거액에 매각하고 이 자금으로 새로운 회사들을 연쇄적으로 창업했다.

2002년 우주항공기업 스페이스X를 만들어 로켓 재활용 기술로 우주선 발사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하고 궁극적으로는 화성 개척을 추진했다. 2004년에는 신생 전기차업체 테슬라에 투자자로 참여한 후 경영권을 확보해 CEO로서 글로벌 자동차산업의 판도를 바꿨다. 2006년 태양광 발전회사 솔라시티를, 2015년 비영리 인공지능 연구업체인 오픈AI를, 2016년 교통체증 문제를 해결하는 지하터널 서비스업체 더보링컴퍼니를 창업했다. 그리고 그해 인간 두뇌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하는 획기적 기업 뉴럴링크를 세웠으며, 2022년 세계 최대 소셜미디어 트위터를 인수해 알고리즘을 오픈소스로 전환해 투명성을 높이겠다며 비상장기업으로 전환했다. 현재도 인공지능(AI), 암호화폐, 자율주행차 등 새로운 사업에 계속 진출하고 있다. 쉴 새 없이 새로운 기업들을 연쇄적으로 창업한 것이다.

비전과 전략의 교과서 같은 테슬라

머스크는 창업하는 기업마다 그 분야를 근본적으로 바꿀 획기적 비전과 전략을 제시했다. CEO 리더십은 미래에 달성하려는 꿈인 비전과 실행 방법인 전략이 핵심이다. 비전만 있고 전략이 없으면 몽상가에 지나지 않으며, 반대로 전략만 있고 비전이 없으면 근시안적 경영에 빠지게 된다. 머스크가 창업한 기업들을 분석하면 하나같이 CEO 리더십의 교과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비전과 전략이 탁월하다. 그중에서도 테슬라가 대표적이다.

2006년 머스크는 ‘테슬라의 비밀 마스터플랜’이라는 독특한 스타일의 문건을 발표했는데 전략적 비전선언문의 완벽한 표본이다. 그는 “테슬라의 궁극적 목표는 인류가 탄소경제를 탈피해 지속가능한 태양전기 경제로 이행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 목표 달성에 가장 중요한 관건은 공해배출의 주원인인 탄소연료 자동차를 완전히 전기차로 대체하는 것이므로 전기차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타협할 수 없다”고 비전을 선포했다. 불확실성이 높은 초기 단계인 전기차 시장으로 진입하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거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머스크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완전한 전기차로의 이행은 테슬라에 수익창출의 수단이 아니라 절실한 미래 꿈인 비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머스크는 전기차로의 즉시 이행이라는 위험한 비전을 타협 없이 추구하면서도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치밀한 전략을 동시에 제시한다. 그는 “친환경 가치에 동의해 고가의 가격도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는 고소득 고객을 대상으로 한 초고가 하이엔드 시장에 먼저 진입해 높은 마진으로 대규모 수익을 창출하고, 여기에서 조성된 여유 자원을 저가의 대량생산 모델 개발과 생산에 투자해 전기차를 대중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테슬라는 이를 통해 전기차를 대중화하는 데 성공했다.

당대 최고의 연쇄적 창업가로서 머스크는 진입하는 사업마다 당면한 핵심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해 완벽하게 해결할 꿈같은 미래 비전을 제시한 후 이를 실현할 치밀한 전략을 밝혀 왔다. 현실적 제약조건을 반영해 비전 자체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혁신적 전략으로 꿈같은 비전을 실행한 것이다. 예를 들면 대부분 전기차업체가 고성능 배터리 신기술을 개발하느라 엄청난 투자를 할 때 테슬라는 일반 배터리를 소프트웨어를 통해 전기차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 손쉽게 문제를 해결했다. 또 우주선 발사의 천문학적 비용 때문에 우주산업 발전이 지체될 때 우주선 재사용기술 개발에 적극 투자해 이 문제를 혁신적으로 해결했다.

단기 성과 집착하는 근시안적 기업들

테슬라와 대비되는 기업이 토요타다. 토요타는 2020년 발표한 새로운 비전에서 기존의 하드웨어 생산과 판매를 탈피해 “모빌리티, 즉 이동성을 제공하는 디지털 소프트웨어 기업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현실적 시장성숙도를 고려해 중간단계로서 하이브리드 자동차 생산과 판매에 집중하는 전략을 선택해 현재 자동차산업에서 부동의 수익규모 1위를 지키고 있다. 이에 반해 테슬라는 현재 수익규모는 토요타에 훨씬 못 미치지만 미래 잠재력을 반영하는 기업가치에서는 모든 산업을 통틀어 압도적 1위다. 자동차산업 전문가들은 앞으로 10년 후인 2030년대 중반 토요타와 테슬라 중 누가 글로벌 자동차산업을 지배할 것인지 논쟁을 벌이곤 하는데 필자는 당연히 미래의 가슴 뛰는 꿈을 추구하는 테슬라에 한 표를 던진다.

머스크의 비전 리더십은 우리 CEO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우리나라에서 테슬라처럼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미래 비전과 이를 실행할 치밀한 전략적 논리를 제시하는 기업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비전은 ‘미래에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방향의 문제인 데 반해 전략은 ‘어떻게 갈 것인가’라는 방법론의 문제다. 우리 기업들은 대부분 가슴 뛰는 미래의 꿈이 아니라 10년 후의 시장점유율, 매출규모, 원가절감과 같은 성과목표를 비전으로 착각하고 있다. 어디로 갈 것인지 명확한 선택 없이 열심히 빨리 가자고만 하는 근시안적 성과주의 경영은 조만간 방향을 잃고 무너지게 된다. 꿈같은 비전과 치밀한 전략을 동시에 가진 진정한 CEO 리더십을 기대한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