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위상 크게 높아졌지만
국제 무대선 우물 안 개구리
경기력 향상으로 극복해야
국제 무대선 우물 안 개구리
경기력 향상으로 극복해야
올해 야구 종목을 담당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야구장 표 좀 구해 달라” “선수 유니폼이나 사인볼 받아줄 수 있느냐”였다. 42년 프로야구 역사에서 야구의 인기와 위상이 이렇게 높았던 적이 있을까 할 정도로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 KIA 타이거즈의 통합우승으로 끝난 2024시즌, 각종 시상식에서 선수와 감독, 코칭스태프들이 그간의 노력을 보상받고 즐기는 축제의 시간이다.
그러나 시즌 종료와 시상식 사이에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참사’가 있었다는 걸 벌써 잊은 모습이다. 한국 야구대표팀은 졸전 끝에 예선 탈락했다. 대만에 일격을 당했고, 라이벌 일본엔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완패했다. 한국 프로야구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자명한 현실에 직면했다.
WBSC 소속 국가는 84개다. 미국, 일본을 제외하면 프로 리그가 제대로 운영되는 곳은 한국 정도다. 대만, 쿠바, 호주, 도미니카공화국 등은 일부 뛰어난 선수들이 있을지언정 프로라고 부르기 어려운 수준의 리그를 갖고 있다.
그런 팀들과 대결해 한국은 5위에 그쳤다. 12개 국가 중 중간이다. 잘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면 질타를 해야 맞는데 그런 야구인이 얼마 없다. 한국야구위원회(KBO)를 비롯한 야구계는 세대교체를 위한 실험이었다는 위안만 삼고 있다. 202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028 LA올림픽과 비교해 중요도가 낮은 프리미어12는 대충 치렀다는 것인가.
심각성을 하나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왜 이럴까. KBO 리그에서 이룰 수 있는 성취가 국제대회 성적과 별개라는 인식 때문인가. 한국에서만 실력을 인정받아도 고액 연봉을 받고, 충분한 인기를 누릴 수 있다. 올해 프로야구는 역대급 흥행 돌풍이 이어지며 관중들이 야구장을 꽉꽉 채웠다. 응원하는 팀 순위나 경기 결과와 무관하게 무한한 애정을 보냈다. 이게 독이 된 것은 아닐까.
프로야구는 지역 연고와 연계돼 독특한 팬덤을 형성했다. 이제야 1000만 관중 시대를 열었을 뿐 야구는 언제나 최고의 인기 스포츠였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선진 시스템을 갖추고,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기점으로 젊은층이 유입되며 흥행에 불이 붙었다. 승부 조작, 음주운전, 폭행 등 선수의 일탈, 국제대회 성적 하락, 코로나19 등 여러 부침이 있었으나 10개 구단 체제가 갖춰지면서 매년 화젯거리를 낳았다.
그러나 지금의 인기가 언제 잦아들지 모른다. 구단, 선수, KBO 모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답은 경기력 향상뿐이다. 좋은 기량을 보여주지 않으면 관중은 외면할 수밖에 없다. 긴장감 넘치는 승부처마다 나오는 ‘실수’를 줄여야 한다. 팽팽한 경기를 이어가다 폭투, 수비 실수, 타자들의 어이없는 헛스윙 등이 결과를 가르는 걸 즐길 관중은 많지 않다. 선수들의 자기 관리와 체계적인 훈련, 좋은 경기장 환경에서 명승부가 많이 나와야 한다. 경기의 질을 높이지 않으면 위기가 따른다. 리그 수준이 올라야 국제대회에서도 예전 같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다.
경기력을 높이려면 3명으로 제한된 외국인 선수 수를 더 풀고 2026년 도입을 앞둔 아시아쿼터도 적극 활용해 외국인 선수를 경기에 더 투입해야 한다. 문호를 개방하고 경쟁해야 국내 선수들 실력이 한층 더 좋아질 것이다.
요새 기업계에선 대기업의 위기라는 얘기가 많이 들린다. 프로야구단을 운영 중인 기업들의 이름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들 기업이 프로야구에서 언제 발을 뺄지 모른다. 야구단을 넘겨받을 기업도 마땅치 않다. 10년째 자리잡은 10개 구단 체제가 영원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 야구계에선 한때 12개 팀을 만들어 양대 리그 제도를 도입하자는 얘기도 있었다. 12개 구단이 되기 전에 8개 구단 체제로 돌아갈 수 있다는 걱정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이 어쭙잖은 조언을 부디 마뜩잖게 여기지 마시길 바란다.
김민영 문화체육부 기자 m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