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경주 (5) 연습에 또 연습… 골프 실력 일취월장

입력 2024-12-09 03:04
최경주 장로가 2010년 모교인 전남 완도 화흥초등학교를 찾아 후배들에게 개인지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 4시간을 한시도 쉬지 않고 쳤다. 빛이라고는 희미한 형광등이 전부였기에 공은 보이지도 않았다. 느낌에만 의존했다. 그렇게 4개월이 지나가자 골프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골프는 공을 멀리 쳐 내는 운동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학교 테니스장 한쪽에 작은 구멍을 파고 테니스공이 담긴 통을 묻더니 ‘홀(hole)’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홀에 공을 굴려 넣는 ‘퍼팅(putting)’ 연습을 시키셨다. 골프는 홀에 누가 제일 먼저 공을 넣는지를 겨루는 운동이었다. 되돌아보면 최경주 인생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하나님의 기가 막힌 인도하심이다. 나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골프에 빠져들었다.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연습에 몰두했다.

테니스장에서 퍼팅 연습을 마치면 언덕 위 골프연습장으로 갔다. 당시 프로 골퍼에게 지도를 받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연습장 주인인 추강래 사장님이 지도해 주셨지만 그분도 초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골프를 향한 열정만큼은 여느 프로 골퍼 못지않았던 사장님은 개인적 친분이 있는 골퍼를 초청해 특강을 시켜 주셨다. 그마저도 어려울 때는 잭 니클라우스의 골프 강좌를 그림으로 설명해 놓은 교재를 보며 연습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자 사장님과 골프부 학생들은 ‘사부와 제자’가 돼갔다. 나는 사장님을 사부라고 부르며 따랐다. 사부가 시키는 훈련은 만만치 않았다. 매일 2교시 수업이 끝나면 곧장 연습장으로 달려갔다. 훈련 루틴은 이랬다. 골프 체조를 하고 스윙, 퍼팅 연습과 체력 훈련을 했다.

폐타이어를 머리만 살짝 나오게 땅에 파묻고 쇠파이프로 때리며 스윙 연습을 했다. 쇠로 된 수도 파이프 끝에 쇠뭉치를 달아 연습용 클럽을 만들어 사용했다. 솨파이프가 워낙 무겁다 보니 자연스럽게 허리의 회전을 이용해 때릴 수밖에 없었다. 이에 비하면 골프채는 플라스틱 장난감과 다름없었다. 덕분에 나는 유연하면서도 강한 스윙을 몸에 익힐 수 있었다.

스윙 연습이 끝나면 언덕 위에 있는 연습장으로부터 200m 아래에 있는 도정공장 사거리까지 기어 내려갔다가 오리걸음으로 올라오는 체력 훈련을 했다. 경사는 30~50도로 완만했다가 가팔라지기도 했지만 하체 힘이 남달랐던 나는 맨 뒤에서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밀어주면서 오르곤 했다.

퍼팅은 사부님이 특별 제작한 기계를 활용해 연습했다. 퍼터의 헤드보다 1㎝ 정도 폭이 넓은 기다란 쇠틀 연습기를 만들어 그 안에서 공을 굴리는 연습을 했다. 퍼터를 똑바로 안 치면 헤드가 쇠틀에 부딪혀 소리가 나는 구조였다. 연습에 집중하지 않아 소리가 나면 사부님한테 야단맞기 일쑤였다. 한 사람 당 공을 200번씩 굴려야 쉴 수 있었기에 골프부가 제일 싫어하는 훈련이었다.

이즈음에서 골프에 대한 생각을 얘기하고 싶다. 골프라는 운동은 사회에 이바지하는 바가 많다. 개인적으로는 월드컵과 올림픽을 제외하고 개인 종목 가운데 대한민국을 알리는 데 골프가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골프가 사치스러운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절대 그렇게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골프를 통한 스포츠 외교에 대해서 한 번쯤은 칭찬해 줬으면 한다.

정리=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