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민주공화국의 국회의원

입력 2024-12-09 00:36

2016년 촛불 집회 거치면서
누구나 외우게 된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군주나 일부 엘리트가 아니라
국민이 국가를 공유하는 체제

이를 전복하려 한 대통령 탄핵
표결 자체 거부하는 게 맞는가

자기 나라 헌법 1조를 정확히 외우는 국민의 비율은 대한민국이 아주 높은 편이다. 정확한 데이터는 없으나, 내 경험상 그렇다. 미국과 국내에서 한국사를 강의하면서 그런 경험적 데이터를 수년간 얻었다. 권위주의적 독재체제에 저항한 한국 현대사를 다룰 때면 나는 한국의 헌법 1조를 소개하며 각 나라의 헌법 1조는 무엇인지 서로 나눈다.

미국 헌법은 일단 1조의 내용이 복잡하다. 국가정체성을 명시하기보다는 입법 관련 내용이 가득하기에 학생들은 그 조문을 제대로 모른다. 프랑스 학생 중에서는 헌법 1조를 외우는 경우가 더러 있다. 내용을 보면 공화국이라는 국가정체성이 명료한 편이나, 누구나 쉽게 외우기에는 좀 길며 내용도 간단하지 않다. 영국 학생은 그런 걸 아예 잘 모른다. 아마도 성문헌법이 없기 때문일 듯하다. 독일에서 온 학생도 대개 외우지 못한다. 그래서 찾아보니, 주로 기본권을 명시했는데, 쉽게 외우기에는 꽤 길다. 일본은 1조의 첫 단어가 천황인데, 문장을 완전히 외운 학생은 아직 본 적 없다.

수업 중에 확인한 사례일 뿐이며 모수가 워낙 적은 탓에 통계 처리하기에는 크게 부족하다. 그런데 내국인에게 대한민국의 헌법 1조를 물어보면 적지 않은 학생이 술술 말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두 번째 문장이 다소 길지만, 내용은 간단명료하다. 외우기도 쉬운데, 물론 다른 더 큰 이유가 있다.

지금 대학생들은 대개 2016년 겨울에 초등 고학년이거나 중학생이었다. 바로 그해 초겨울부터 본격적으로 타오른 탄핵 촛불집회 때 헌법 1조가 크게 회자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축약해 외쳤지만, 방송 화면을 통해 전국에 걸쳐 장기간 울려 퍼졌다. 그 효과는 지금껏 이어진다. 그때 학교에서 실제로 헌법 1조를 공부했다는 학생이 적잖다. 그래서 다들 잘 안다. 진행 중인 역사 현장을 체험하며 학습한 생생한 교육 효과인 셈이다.

그런데 정작 ‘공화국’이란 무엇인지, ‘민주공화국’이란 또 무슨 개념인지 물어보면 조리 있게 답하는 학생은 매우 적은 편이다. ‘권력’과 ‘국민’의 정확한 의미가 뭐냐고 물어도, 역시 우물거린다. 민주공화국에서 태어나 자유롭게 성장했기 때문일까? 오히려 민주공화국의 의미를 잘 모른다는 역설에 종종 직면한다. 그래도 1조를 외우는 것만으로도 민주주의의 소중한 자산이다.

공화국의 핵심 의미는 공공(公共, public)이다. 국가를 군주나 한 줌의 엘리트가 전유하는 게 아니라 전체 구성원 즉 국민이 공유하는 체제를 이른다. 하지만 제각기 이해관계가 다른데 공공의 합의가 쉽지는 않다.

그래서 공개 토론도 하고, 협상도 하고, 절충도 하고, 마지막으로 투표도 한다. 이런 모습이 시스템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제대로 작동한다면 민주공화국이다. 겉모습은 갖췄으나 실상이 그렇지 않다면 대개 독재 공화국이다. 독재와 공화라는 말은 솔직히 병립하기 어려우므로 독재 공화국은 어불성설이다.

지난 3일 밤, 이 땅에 경천동지할 큰일이 벌어졌다. 무장한 병력이 국회에 진입했다. 계엄령을 발동할 상황도 전혀 아니었거니와 그 사실을 즉각 국회에 알리지 않았으므로 불법이다. 국회가 의결 후 즉시 용산에 알렸는데도, 해제를 즉각 선포하지 않았다.

이도 명백한 위법이다. 가장 큰 죄는 계엄령과 무관한 국회를 접수하려 획책한 사실이다. 심지어 일부 국회의원을 체포하려 계획했다는 증언도 속속 나왔다. 민주공화국의 얼굴이자 심장부인 국회를 무력으로 점거하려 한 행위는 명백한 내란이다. 우리는 이미 전두환 사례를 통해 확실한 판례도 갖고 있다. 우두머리가 현 대통령임도 백일하에 드러났다.

대통령의 직무를 즉각 정지시키자는 탄핵소추안 표결에 국민의힘 의원들은 집단행동을 보이며 참여하지 않았다. 자기 스스로 헌법기관임을 부정하고 그저 당리당략에 골몰하고 있음을 여러 TV 생방송을 통해 여과 없이 드러냈다. 민주공화국이라는 국가정체성을 노골적으로, 공개적으로 부정한 셈이다.

과연 민주공화국의 국회의원 맞는가? 계엄 해제 표결을 방해한 행위나 탄핵소추안 표결 자체를 거부한 행위는 내란 방조를 넘어 동조이며, 적극적 동참일 수 있다.

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