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겠지만, 내가 어린 시절에는 ‘양심 냉장고’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도로에 차가 거의 없는 야심한 시각, 제작진과 출연자는 임의의 도로에 잠복했다가 지켜보는 이가 없음에도 안전선을 지키거나 규정 속도를 준수하는 차량을 쫓아가 양심을 지킨 보상으로 냉장고를 선물했다. 첫 방송 이후 어마어마한 화제를 모은 ‘양심 냉장고’는 이후 우후죽순 생겨난 수많은 공익 예능의 시초가 됐었다.
‘양심 냉장고’를 기획한 김영희 PD는 첫 아이디어를 자신의 경험에서 얻었다고 했다. 우연히 보행자가 아무도 없는 도로에서 신호를 지켰는데 무척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이 특별한 경험에서 착안한 기획이 ‘양심 냉장고’였다. 흥미로운 시작이 아닐 수 없다. ‘양심을 지키면 다른 것은 몰라도 나의 기분이 좋다’라는 명제는 단순하지만 절대적으로 옳다.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손익이나 타인의 시선과 무관하게, 오로지 스스로의 품위를 지키고 인간된 도리를 하기 위해서 양심에 따라 행동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은 인간으로서의 우리 자신을 지켜나갈 수 있는 소중한 기억이 돼 삶을 붙잡아주고 자존감의 원천이 된다.
‘양심 냉장고’ 방영 이후 교통사고가 많이 줄었다고 하니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양심에 따라 행동할 수 있게 됐던 모양이다. 허술한 법과 제도 아래에서도 사회가 존속될 수 있는 이유는 이 같은 개인의 선의와 양심이 빈 곳을 부드럽게 메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 양심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얼마나 아름답고 고결한가. 이러한 믿음 때문에 스스로의 앙심을 저버리는 타인을 마주했을 때의 절망과 실망은 무척 크다. 주말에는 양심이라는 것을 가져본 적 없는 것처럼 파렴치하게 행동하는 이들과 그들에 맞서 최선의 선의를 발휘하는 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사회가 결정권과 권력을 가진 이일수록 ‘양심’이라는 소박해보이지만 너무나 중요한 가치를 더욱 더 수호하고자 하는 장소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