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정규 앨범 깎는 음악가들

입력 2024-12-06 00:34

가성비 떨어져도 장인정신
가득해… 오직 음악을 위한
비효율에 응원·경의 보낸다

‘정규 앨범’이라는 개념이 있다. 흔히 1집, 2집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음반이다. ‘스튜디오 앨범’이라고도 불리며, 음악을 진지하게 듣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앨범 형태다. 보통 10곡 전후의 노래가 수록된다. 수록곡은 음악가가 추구하는 음악적 방향성에서 특별하게 연출된 세계관까지 앨범을 관통하는 굵은 서사를 따라 나열되고, 그로 인한 유기성을 가진다. 인공지능이 추천하는 플레이리스트나 알고리즘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이 대다수인 세상에서 꽤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만 획득할 수 있는 남다른 인증마크인 셈이다.

인증 절차만 까다롭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정규 앨범은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도 여간 돈과 손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 아니다. 우선 돈 이야기부터 해보자.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앨범에 수록된 곡이 많을수록 제작비는 올라간다. 하나의 노래를 녹음하고 다듬어 세상에 나가도록 완성하는 데까지 모든 단계마다 전문가의 손길과 인프라가 필요하다. 스스로 곡을 쓰지 않는 경우에는 여기에 곡 비용도 추가된다. 산수 수준의 단순한 곱셈만으로도 10곡짜리 앨범을 내는 건 싱글 한 곡에 비해 10배 이상의 제작비가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정규 앨범’의 무게가 더해진다. 음반 커버에서 전반적인 패키지 디자인, 앨범 발매 후 관련된 이벤트까지. 정규 앨범 한 장 내자고 계산기 두드리다 한세월이 지날 지경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도무지 궁금해진다. 그럼에도 음악가들은 왜 정규 앨범을 고집하는가. ‘대(大) 가성비의 시대’에 가성비가 가장 떨어지는 일에 왜 골몰하느냐는 말이다. 아무리 고민해도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에는 결국 직업윤리와 장인정신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당장 K팝 씬만 해도 그렇다. 얼핏 보면 비즈니스와 화력으로만 돌아가는 것 같은 이곳에서도 정규 앨범은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정규 앨범은 성실한 활동을 지속해 온 가수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자 해당 가수가 인지도나 음악적인 면에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생각해도 좋다는 증거다.

내년이면 데뷔 9년이 되는 블랙핑크가 보유한 정규 앨범이 단 두 장이고, 올 연말 소속사와 전속계약 종료를 알린 프로미스 나인은 6년 동안 한 장의 정규 앨범을 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정규 앨범을 둘러싼 씬의 분위기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온 세상의 주목과 자본이 몰린다는 K팝만 해도 이럴진대 비K팝 가수들의 사정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얼마 전 첫 정규 앨범 ‘humanly possible’을 발표한 전자음악가 휘(HWI)는 앨범을 만들기까지 꼬박 6년의 세월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음악가의 성장과 동시에 정규 앨범이라는 형식으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천천히 조각해 간 시간이었다. 3년 만에 정규 2집을 낸 밴드 검은잎들은 앨범 프로듀싱을 위해 일면식도 없는 음악가 조동익에게 메일을 보내 무작정 매달렸다고 한다. 과작(寡作)은 물론 외부 일을 쉽게 수락하지 않는 걸로 유명한 그도 ‘당신이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까마득한 후배들의 반복된 간곡한 청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앨범 ‘비행실’이 탄생했다. 회기동 단편선에서 단편선과 선원들로, 이제는 새로운 동료들과 단편선과 순간들이 된 음악가 단편선은 언제 다시 할 수 있을까 싶던 새 음악을 담은 정규 앨범 ‘음악 만세’를 7년 만에 선보였다. “정의하지 못한 채 시작해 정의하지 않고 마쳤다”는 말과 함께.

단편선의 이 말은 어쩌면 지금, 이 시대에 정규 앨범에 매달리는 세상 모든 음악가들이 붙들고 있는 공통분모일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정의할 수 없을지도 모를 무정형의 무언가를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오늘도 다듬고 깎고 있는 당신들의 비효율에 응원과 경의를 보낸다. 그 기꺼운 노고를 아는 이들과 함께 앞으로도 음악의 세계를 조금 더 탐험해 나가고 싶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