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MZ 세대의 여행 드림 리스트에 한국이 1위에 올랐다는 해외 설문조사가 있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 드라마 ‘오징어 게임’, 영화 ‘기생충’으로 대표되는 대중문화 때문이다. 세계 주요 도시의 한식당이 붐비고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올해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까지 이어지며 이제 어디든 한국을 대표하는 알파벳 K가 붙으면 멋져 보이고 호기심이 생겼다. 이렇게 한국은 세계인이 와보고 싶은 매력적인 나라로 떠올랐다.
콘텐츠의 힘뿐 아니다. 한국은 안전한 나라라는 인식이 강했다.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들은 카페에 휴대전화와 노트북 등을 놓고 자리를 비워도 아무도 이를 가져가지 않는 것에 놀란다. 치안이 좋아 밤에 다녀도 괜찮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는 해마다 늘어 올해 2000만명 정도로 예상된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한국이 여행 위험국으로 전락했다. 주한 미국대사관은 4일 홈페이지 첫 화면에 ‘미국 국민을 위한 긴급 지침’이라는 제목으로 빨간색의 ‘경고(ALERT)’라는 경보 알림을 올렸다. 주한미군사령부도 계엄 관련 사태는 아직 종료되지 않았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미국은 1980년 5월 17일 신군부가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사실상 한국에 대한 여행 금지령을 내렸다. 이후 44년 만에 정치적 이슈로 인한 여행 경보가 내려진 것이다. 캐나다 호주 영국 등 많은 국가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전쟁 중인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 러시아까지 한국 상황이 우려스럽다고 여행 주의령을 내렸으니 국제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가 촉발한 일이다.
하기야 무장한 계엄군 수백 명이 새벽 국회 본관 앞에서 민간인과 대치하는 장면을 보고도 한국을 안전한 나라로 인식할 수 있겠는가. 계엄령은 몇 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은 갑자기 헌정질서가 무너지고 군이 민간인에게 총을 겨눌 수 있는 위험한 국가가 됐다. 많은 이들이 쌓아온 K의 명성에 대통령 한 사람이 먹칠을 하고 말았다.
한승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