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8일 기준금리 인하 결정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결정이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미국 대선 결과, 구조적 원인에 따른 수출 둔화로 낮아진 경제성장률 등이 연속 금리 인하 배경으로 언급됐다. 이 총재는 단기 대응과 함께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을 막는 것도 중요하다며 구조개혁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지난 3일 한국은행 스튜디오에서 만난 이재원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장은 구조개혁을 우리가 바꿀 수 있는 미래로 규정했다. 그는 “지금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5년, 10년 뒤 미래가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금리 인하를 두고 ‘실기론’과 ‘깜짝 인하’가 같이 나오는데.
“지난 8월은 수도권 주택 가격이 급상승하고, 가계부채도 급증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금리 인하를 했으면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상황이 아니었나’ 싶다. 금융 안정은 한은의 주요 책무 중 하나인데, 금융 안정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컸다. 성장을 놓고 봐도 적절한 거시건전성 정책 선행 없이 금리만 인하하면 효과가 매우 제한적이다. 금리 인하가 부채 증가로 이어졌다면 중장기적인 성장 모멘텀 측면에서도 역효과가 난다. 학계나 시장에 계신 전문가들과도 소통하는데 8월에 한 번 쉬고 10월에 인하한 게 굉장히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대부분 말씀하신다. 반대로 두 번 연속 인하해서 파격적 인하라는 평가가 나왔지만 과거 관행으로 현재 통화 정책을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주어진 상황이 바뀌면 대응도 바뀐다. 수출 둔화가 저희 예상보다 좀 더 오래갈 것 같다고 판단한 것이 영향을 미쳤고,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 그냥 당선된 것도 아니고 상당한 차이로 이겼고, 공화당이 상원과 하원을 가져간 ‘레드스위프(Red Sweep)’도 있었다. 새로운 정보를 반영할 수밖에 없었다.”
-금리 인하에 따른 자본 유출이나 환율 변동 우려도 있다.
“저희는 환율 레벨 자체보다도 변동성을 보고 있다. 당분간 변동성이 지속할 것 같아서 그 부분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그런데 환율 변동성은 한·미 금리 차 외에 여러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또 대외 여건 불확실성이 커서 이번 금리 인하가 환율에 미치는 영향을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다만 과거에 비해 단기외채가 많이 줄었고, 경상수지 흑자가 지속돼 달러가 들어오는 상황이다. 외환보유고도 충분해 우리 경제가 어느 정도 환율 변동성에는 강건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초체력이 있다. 환율 변동성이 큰 상황이 오더라도 외환보유고 등 정책수단으로 대응할 수 있다.”
-내년 성장률 전망이 잠재성장률보다 낮은 1.9%로 내려왔다.
“잠재성장률(2.0%)에서 낮아진 0.1% 포인트라는 숫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다. 통화 정책 측면에서 보면 0.1% 포인트가 ‘큰 위기다 침체다’라고 말하긴 어렵다. 중장기적으로 우려가 있는 건 사실이다. 저출산 고령화, 생산성 둔화 등으로 우리 경제 성장 잠재력이 낮아지는데 이 문제는 통화 정책으로 전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더 늦기 전에 구조개혁을 통해 성장 동력 확보가 긴요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안이하게 보지는 않는다. 지난 1년간 꾸준히 구조개혁 보고서를 내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다만 비즈니스 사이클 측면에서 성장률 2.0%와 1.9%의 차이를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내년 수출 증가율 전망이 당초 2.9% 증가에서 1.5% 증가로 낮아졌다.
“미국 선거 결과, 반도체 부분 등에서 중국의 기술력이 높아져 우리 기업 점유율이 축소될 수 있다는 새 정보를 반영한 결과다. 철강 화학제품 등 비IT 부문에서 중국의 공급 과잉도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일시적 요인이 아니라 내년, 심하면 내후년 수출까지도 영향이 있어 반영했다. 하지만 너무 비관적으로 볼 필요도 없다.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서 고성능 반도체가 서버뿐 아니라 IT 기기 등으로 확대되면 우리 수출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중국과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데,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면 우리 수출에 반사이익이 있을 수도 있다.”
-‘트럼프 재집권’으로 경제 불확실성이 커졌는데.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예고한 정책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상반된 방향으로 영향을 줄 수 있어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칩스법(반도체지원법) 폐지 같은 것도 폐지하면 영향을 받는 곳이 트럼프 지지 기반 지역이다. 관세 부과를 실제로 할지 의문을 표하는 의견도 많다. 트럼프 당선의 1등 공신은 ‘높은 물가’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물가가 상승할 수 있는) ‘미국의 관세 인상’보다 미국으로부터 에너지·가스 수입을 확대하는 것이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 같다.”
-한은이 경제 구조개혁과 관련한 보고서를 많이 내고 있다.
“성장 잠재력이 낮아지고 있어 구조개혁이 절실한 시점이다. 저출산 고령화, 생산성 둔화, 근로소득 대비 높은 주택 가격 같은 구조적 문제는 지금부터 해결해야 한다. 지금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5년, 10년 뒤에 미래가 바뀔 수도 있다. 당장 되는 게 아니더라도 구조개혁은 사회적 합의만 잘 끌어내면 우리가 바꿀 수 있는 미래다. 구조 개혁을 위한 골든타임이라는 절박한 심정이 있다. 한은이 뭐 이런 거까지 연구하냐는 반응도 있는데, 경제 구조에 대한 실증연구는 거의 전 세계 중앙은행이 하는 임무다. 연방준비제도(Fed)나 유럽중앙은행(ECB)도 통화정책을 집행하는 정책기관이자 가장 중요한 싱크탱크다.”
김현길 김준희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