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대갓집이었다는 낡은 한옥이 나오고/ 문간에서 팔순이 된 이모가 반겨줄 것이다/ (중략) 버스를 타고 가며 나는 자꾸만 눈언저리를 닦을 것이다/ 노인네 혼자 빈 집에 남겨져/ 젊은 애들한테 방해나 되게 너무 오래 사는 것 아닌가 하면서/ 잘 펴지지 않는 다리를 조심스레 움직여보면서/ 혼자 오래 걸려 방으로 돌아가실 것을 생각하면서/ 우는 나를 마을버스 기사가 의아하게 거울 속으로 바라볼 것이다.”(‘바닥이 나를 받아주네’·창비·1997)
양애경 시인의 시 ‘이모에게 가는 길’을 꺼내 읽는다. 이모네 집으로 가려면 일곱 살짜리 갈래머리 여자아이를 따라가야 한다. 그 아이의 등을 따라 미금농협과 육교와 원진레이온 공장을 지나야 한다. 거기서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서 세 집을 건넌다. 이모네 집 대문은 녹색 페인트칠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심지 않은 채마밭과 벽에 매달아 놓은 시래기가 찬바람에 이리저리 쓸리기도 할 것이다. 조카가 마을버스에서 내리기 전부터 이모는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계셨을 테지. 아픈 다리를 끌고 한참 전부터.
세월이 흘러도 매양 비슷하게 그려지는 풍경이 있다. 자식들에게 서리태며 고구마, 들기름 한 병이라도 더 챙겨주려는 이의 마음. 뭐라도 더 주려는 이와 사양하는 이의 실랑이. 이런 풍경 앞에서 마음이 무너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카가 떠나고 나면 이모는 연탄불 온기가 가신 방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눈길 위에 동전만한 지팡이 자국을 찍으며 돌아가야 하는 그곳이 ‘빈방’이기 때문이다. 조카 역시 붉어진 눈가를 꾹 누르고 객지로 걸어가야 한다. 이렇듯 정든 사람과 이별한 뒤에는 물기가 남아 있다. 떠나는 사람도, 홀로 남겨진 사람도 물러진 마음을 달래느라 눈빛이 젖어 있겠다. 오래전 세상을 떠난 나의 이모가 떠오른다. 나를 친딸처럼 귀여워해 주시던. 내가 탄 버스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던.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