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의 해묵은 논쟁거리 중 하나는 ‘의료는 공공재인가’ 하는 것이다. 이 논쟁은 ‘의사는 공공재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의료 서비스 자체는 공공재 성격이 강하다. 국민 누구든 존엄한 삶을 살 권리가 있고, 그에 맞게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의료 서비스의 질은 국민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국가가 면허로 관리하고, 의료의 질 평가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무엇보다 건강보험료를 투입하는 서비스라는 게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의사를 공공재라고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의료계는 ‘의사는 공공재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치열한 입시 경쟁을 뚫고 의과대학에 입학해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뒤 의사가 되는데, 일련의 과정은 ‘개인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 6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전국 의사 총궐기대회’에서 한 의사는 “의사에게 볼펜 한 자루 사준 적 없는 나라에서 국가의 지도자들이 ‘의사는 공공재’라는 망상에 빠져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전공의 역시 “국가에 빚이 없다”고 주장한다. 사교육이 만들어내는 의대 입시 속에서 치열하게 경쟁을 한 것도, 그 경쟁에서 살아남은 것도 개인의 희생이라는 것이다. 국가가 면허를 관리하긴 하지만 개원가로 나가 돈을 좇는 의사가 돼도 개인의 선택이며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전공의 집단행동 당시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것을 두고 반발했다. 개인의 자유라는 것이었다. 전공의는 이전의 집단행동과 달리 응급실, 중환자실까지 비우며 병원을 떠났다.
한국 의료가 발전한 과정을 되짚어봐도 의료 서비스의 공공성을 논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많다. 민간 영역에 기대온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빅5’ 상급종합병원이 병상을 크게 늘리며 1, 2차 병원과 ‘경증 환자’를 두고 경쟁을 해왔고, 수익을 좇으며 전공의를 값싼 노동력으로 활용했다. 정부도 전공의 처우 개선에 대한 투자는 병원 자율에 맡기며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야 의료개혁을 통해 전공의 처우 개선, 교육에 초점을 맞춘 수련 환경 개편 등에 나서기로 한 상황이다. 그 사이 필수·지역 의료 현장은 무너졌다. 지역에서 의사를 구하기 위해 ‘몇 억원’의 연봉을 내걸었다는 소식은 이제 기사로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흔한 일이 됐다.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가 6시간 만에 해제했다. 계엄사령부 포고령에는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 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해야 한다. 위반 시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고 쓰여 있었다. ‘처단한다’는 표현의 과격함이나 이미 사직한 전공의의 ‘복귀’가 가능한지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의료계는 명령 자체로 반발했다. 한 의대 교수는 “의사를 공공재로 여기는 대통령과 정부 인식이 드러난 것”이라고도 했다.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의사 위원들은 사퇴 의사를 밝힌 상태다.
계엄령으로 인해 의료계의 해묵은 논쟁이 다시 불붙었지만 분명한 건 의료 개혁은 국민 건강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의대 증원 논란에 가려졌지만 의료 전달체계 문제,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비급여·실손보험 개편 등 오랫동안 풀지 못한 숙제를 이제 막 손대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이 모든 과제가 계엄이라는 대통령의 오판에 가려져 무산되지 않기를 바란다. 국민을 위한 의료 서비스 개선이라는 과제는 한밤중 들이닥친 계엄군의 군홧발에 밟혀 사라질 과제가 아니다. 새해에는 국민 건강을 위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길 소망한다.
김유나 사회부 차장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