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게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한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4일 “비상계엄과 관련해 국민께 혼란을 드리고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사의를 밝혔다. 비상계엄 상황이 종료된 지 약 14시간 만이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과 군사분계선(MDL) 일대 도발 등 비상시국에 국방 사령탑 공백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엄중한 시기에 김 장관 스스로 안보 위기를 불러왔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 장관은 오후 6시15분쯤 국방부 기자단에게 발송한 문자메시지에서 “비상계엄과 관련한 모든 사태의 책임을 지고 대통령께 사의를 표명했다”며 “비상계엄 사무와 관련해 임무를 수행한 전 장병들은 장관의 지시에 따른 것이며,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고 말했다. 군에 따르면 김 장관은 전날 윤 대통령에게 비상계엄 선포를 건의한 당사자다. 윤 대통령의 충암고 1년 선배이자, 현 정부 초대 경호처장을 지냈다. 김 장관은 이날 새벽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해제한 이후 국방부 관계자 등에게 소집 해제를 지시하며 “중과부적(수가 적으면 대적할 수 없다)이었다. 수고했다”는 언급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앞서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야당의 계엄 의혹 추궁에 “(계엄이) 발령되고 나면 국회에서 해제할 수 있는 권한이 보장돼 있다. 이런 것들이 다 돼 있는데도 불구하고 계엄, 계엄 하시는 것에 대해 이해가 잘 안 간다”고 답했었다.
계엄 선포 및 해제 파장으로 군 당국은 한동안 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방 수장인 국방장관 공백이 불가피한데다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됐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에 대한 책임론도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박 총장은 김 장관의 육사 8기수 후배로 전날 밤 ‘국회와 정당 등 정치활동 금지’ 등을 담은 계엄사 1호 포고령을 내렸다. 국회 국방위원회는 5일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된 현안질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김 장관이 깊숙이 관여한 이번 계엄으로 군이 다시 한 번 과거 군사정권 때의 오명을 뒤집어 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대남 도발을 강화하는 북한에 대한 억제력을 강화할 시기에 군이 오히려 국민의 신뢰를 잃는 행위를 자초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자신들을 힘들게 하던 윤석열정부가 흔들리고 있다는 정치적 판단을 할 것”이라며 “한·미 확장 억제력 강화, 한·미·일 군사협력 등이 완화할 가능성도 커 한숨을 좀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합동참모본부는 4일 김명수 합참의장 주관으로 긴급 작전지휘관 화상 회의를 개최했다. 김 의장은 “군 본연의 임무인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보호하고, 북한이 오판하지 않도록 철저한 대비태세를 유지하라”고 전군에 지시했다.
합참은 또 당분간 대비태세(감시 및 경계작전) 임무 이외의 부대 이동은 합참 통제 하에 실시하도록 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