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 여파로 전날 2500선에 턱걸이했던 코스피가 4일 2460선까지 주저앉았다. 금융 당국의 시장 안정 노력에 최악의 사태는 피했지만 미국발 불확실성이 엄습한 한국 경제에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더해지면서 금융·외환시장은 종일 출렁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36.10포인트(1.44%) 하락한 2464.00에 장을 마쳤다. 코스닥도 전 거래일보다 13.65포인트(1.98%) 내린 677.15에 거래를 종료했다.
우려했던 급락까지는 아니지만 외국인 투자 심리가 빠르게 식고 있는 모습이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4055억원을 팔아치웠다. 전날 유입된 외국인 투자 자금이 고스란히 빠져나갔다.
원·달러 환율은 주간 거래 기준(오후 3시30분) 전일 대비 7.2원 오른 1410.1원에 마감했다. 환율은 전날 밤 비상계엄 선포 직후 급등해 한때 1442.0원까지 치솟았지만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하향했다. 다만 변동성은 크다. 전문가들은 외국인 자금 이탈이 원화 약세를 불러 국내 증시에 추가로 부담을 주는 상황이 당분간 계속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 상황이 흔들리면 외국인 투자자나 기업과 같은 경제 주체들의 투자, 고용도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은 주요 7개국(G7)을 비롯한 각국 재무장관에게 한국의 경제 안정 의지를 강조하는 서한을 발송하고 “비경제적 요인에 따라 발생한 혼란은 건전한 경제 시스템에 의해 효과적으로 통제되고 있다”고 밝혔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주요 국제기구와 글로벌 신용평가사, 투자은행(IB) 등에도 서한을 보냈다.
최상목 부총리는 오전에는 긴급 경제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한 뒤 “실물경제 충격이 발생하지 않도록 24시간 경제·금융 상황점검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오후에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경제6단체 대표들과 긴급 간담회를 열고 “어떤 상황에서도 기업 경영 활동에 차질이 없도록 현안을 신속히 해소하겠다”고 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오후 블룸버그TV에 출연해 “비상계엄 사태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달러 환율과 관련해서는 “여러분이 우려하는 것보다 상황을 잘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금융 당국의 대응에도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안팎의 시선은 곱지 않다. 상대적으로 빨리 비상계엄 사태가 진화됐지만 경제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해결은커녕 과제가 더해졌다는 점에서 경제에 ‘최악의 수’가 됐다는 평가가 주다. 대외신인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는 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 불확실성 확대로 연결되고 있다.
이날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 대외신인도를 보여주는 5년물 한국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계엄 선포 후 0.365% 포인트를 웃돌다 해제 후 현재 0.351% 포인트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날 0.345% 포인트보다 소폭 오른 상태다. CDS 프리미엄은 한국이 발행한 채권 등에 대해 국가 위험도를 반영하는 수치로 지표가 올라가면 외국인투자자들이 한국에서 투자금을 뺄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비상계엄 사태로 당장 대외신인도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이날 NICE신용평가와의 공동 세미나에서 비상계엄 선포로 한국의 신용등급 강등을 고려하진 않고 있다고 밝혔다. 관건은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정치적 후폭풍이 얼마나 오래 이어질지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한국은 정치적으로 불안한 나라’라는 인식이 해소되지 않으면 대외신인도 타격은 물론 금융시장과 실물경제가 동시에 흔들리는 복합 위기가 올 수 있다.
특히 비상계엄 여파가 ‘경제 컨트롤타워 부재’ 사태로 번질 경우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 더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재 최 부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한 상태다. 경제 및 금융 정책도 ‘올스톱’ 위기에 처했다.
경제부처 내부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기재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등의 장관들은 이날 일정을 대부분 취소했다. 취소된 일정 중에는 대외신인도 제고와 관련 깊은 신용평가사 피치 연례협의단과의 면담 일정도 있었다. 소상공인 맞춤형 지원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경제관계장관회의도 연기됐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정치적 불안정 상황이 얼마나 빠르게 수습되느냐에 실물경제의 명운이 달렸다. 여야가 초당적으로 협력해 시장 심리를 안정시키고 대외신인도 하락을 최대한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황인호 구정하 기자, 세종=신준섭 양민철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