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 충격으로 불안이 증폭된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금융 당국이 유동성 공급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레고랜드 사태 등과 비교하면 현재 금융시장은 비교적 빨리 안정을 찾고 있지만 당국은 완전히 정상화될 때까지 필요한 모든 조치를 시행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은행은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입하고, 금융위원회는 10조원 규모의 증시안정펀드(증안펀드)를 가동한다.
한은은 4일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이날부터 비정례 RP 매입을 시행하기로 의결했다. RP는 금융기관이 일정 기간 지난 뒤 확정된 금리로 되사는 조건으로 발행하는 채권이다. 금융 당국은 이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금융기관에 일시적인 유동성을 공급한다. 채권시장에서는 국고채 단순매입, 통안증권 환매를 충분한 규모로 실시하기로 했다.
RP매매 대상 증권은 산업금융채, 중소기업금융채, 수출입금융채, 9개 공공기관의 특수채, 농업금융채, 수산금융채 등으로 확대한다. 현재는 국채, 정부보증채, 금통위가 정한 기타 유가증권으로 대상이 제한돼 있다. RP매매 대상 기관도 국내은행과 외은지점 전체, 증권사와 선물회사 전체로 확대했다. 이외에도 환율이 요동치면 외화 RP 매입을 통해 외화 유동성을 공급하는 등 다각적인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금융위는 필요할 경우 10조원 규모의 증안펀드를 즉각 가동하고, 4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 안정펀드와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을 최대한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증안펀드는 주가 급락을 막기 위해 주식 매입 용도로 조성하는 펀드다. 채권시장 안정펀드도 자금을 조성해 채권을 사들이는 것으로, 채권시장 안정화 수단이다.
다만 금융 당국은 시장 불안정이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박종우 한은 부총재보는 이날 브리핑에서 “현재 금융시장은 코로나19나 레고랜드 사태 때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며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통화정책을 완화 방향으로 운영하고 있으므로 시장 불안 우려가 (이전 사태 당시보다) 상대적으로 작다”고 강조했다.
구정하 기자 g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