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4일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의 탈당, 국무위원 총사퇴, 김용현 국방부 장관 해임을 요구했다. 그러나 친윤(친윤석열)계를 중심으로 윤 대통령 탈당에 대한 신중론이 제기돼 당 차원의 공식 입장은 확정짓지 못했다. 계엄 사태를 제대로 매듭짓지 못하면 보수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는 관측까지 제기되지만 여당은 민심 이반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대표는 이날 오전 7시 국회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소집하고 “전날 대한민국에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났다”며 “5시간의 비상계엄으로 우리 대한민국이 정말 멈출 뻔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태 수습 및 책임 추궁을 위해 당 차원의 조처를 제안했다.
한 대표는 구체적으로 “국민의힘 당대표로서 대통령의 탈당을 정중히 요구하고, 비상계엄을 막지 못한 국무위원들의 전원 사퇴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특히 “김 장관은 즉각 해임해야 하며 관계자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대표 제안에 회의에 참석한 최고위원 전원이 동의했다.
한 대표는 이를 최고위 직후 소집한 비상의원총회에서 당론으로 확정하려 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 탈당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저항에 부딪혔다고 한다.
한 친윤계 재선 의원은 통화에서 “지금 대통령이 탈당하게 되면 집권여당이 제2당으로 전락하게 되고, 야당의 탄핵 공세를 아예 막을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친윤계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보수가 궤멸 직전까지 갔다”며 “야당의 탄핵 공세에 길을 열어줘선 안 된다”고 말했다.
친한(친한동훈)계에서는 한탄이 흘러나왔다. 조경태 의원은 의총 후 기자들을 만나 “탈당 반대가 훨씬 높게 나왔다. 위헌적인 비상계엄에 대해 많은 의원이 심각성을 잘 못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친한계 의원은 “민심이 하야·탄핵으로 돌아서는데 탈당조차 의견이 일치되지 않는 당의 현실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한 대표는 의총 직후 “여러 의견이 있어서 계속 의견을 들어보기로 잠정 결론을 낸 상태”라고 했다. 다만 한 대표는 윤 대통령 탈당 요구를 당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최고위원회가 결정한 만큼 당론 채택 여부와는 상관없이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당대표가 탈당을 요구한 것이니 대통령이 그에 대한 입장을 밝힐 차례”라고 말했다.
이날 의총에서는 윤 대통령 하야나 탄핵 및 임기단축 개헌 추진 주장도 제시됐다. 그러나 일부는 대통령과 당의 소통 부족이 이번 사태를 야기했다며 지도부를 탓하는 목소리도 나왔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사법리스크에도 똘똘 뭉쳐 대응하는데, 그동안 우리는 왜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치고 방어하지 못했느냐’ ‘윤 대통령을 우리가 평소에 너무 외롭게 했다. 우리가 말벗이라도 해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발언도 있었다”고 전했다.
정현수 정우진 이강민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