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전과 결말 달랐던 또다른 이유… 온 국민이 실시간 지켜봐

입력 2024-12-04 18:58 수정 2024-12-04 21:17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저녁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밤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일 오후 10시30분 서울 지하철 2호선 열차 내부가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들은 승객들의 다급한 목소리로 가득 찼다.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지 수 분 만이었다. 마지막으로 계엄령이 선포됐던 45년 전과 달리 스마트폰과 SNS로 실시간 상황을 파악한 시민들은 국회로 뛰어가 계엄군을 막아섰다. 정보기술(IT)의 발전으로 탄생한 ‘초연결사회’(상호 간 네트워크 연결이 극대화된 사회)가 불행한 역사의 반복을 막은 셈이다.

4일 IT업계에 따르면 전날 밤 계엄령이 선포된 직후 인터넷상에 계엄 관련 상황이 실시간 공유되기 시작했다. 젊은층(2030세대)이 주로 접속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10시27분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1분 후인 10시28분 이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유례없는 정보 전파 속도다.

IT·통신망의 발전으로 빠르게 계엄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계엄군의 국회 진입을 막기 위해 속속 여의도로 몰려들었다. 4000명이 넘는 시민 인파는 국회 앞에서 계엄군의 무장 상황과 국회의원 진입 차단 등 상황을 실시간 공유하며 정보를 퍼뜨렸다.

몇몇 대형 인터넷 웹페이지가 트래픽을 견디지 못하고 마비되는 일이 발생했지만 인터넷과 SNS가 이번 사태에서 상당히 빠르게 정보 전달 역할을 했다는 평가에는 이견이 없다. 45년 전인 1979년 계엄 당시에는 개인용 인터넷·휴대전화가 전무했고 유선전화 보급률조차 100명당 8대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통신 수단이 열악했다.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시민들의 발 빠른 대처도 눈에 띄었다. 모든 언론과 출판이 계엄사령부 통제를 받는다는 포고령 1호가 확산하자 텔레그램 가입이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열이 우려되는 카카오톡·문자메시지에 비해 통신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해외 비밀 메신저로 ‘디지털 난민’들이 빠르게 이동한 것이다. 텔레그램이 특정 국가의 일일 가입자 수를 공개하지 않아 정확한 추계는 어렵지만 계엄 선포 직후부터 텔레그램 신규 가입자 알림이 급증했다는 이용자들의 증언이 속출했다.

텔레그램 신규 가입은 한때 대형 포털 뉴스·카페의 일부 기능이 마비되며 불안감이 확산하는 과정에서 더 속도가 붙은 것으로 분석된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30여분 뒤인 오후 11시쯤부터 네이버 카페 모바일 앱에 접속 오류가 발생했다. 이후 네이버는 밤 12시30분부터 오전 2시까지 카페 서비스를 긴급 점검했다. 오후 10시45분부터 11시5분까지는 뉴스 서비스도 비상 모드로 운영됐다. 다음 뉴스도 오후 10시58분부터 잠시 동안 댓글 기능이 먹통이 됐다.

황석진 동국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국내 메신저와 달리 텔레그램은 폐쇄적인 암호화 방식 특성상 감청·검열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며 “텔레그램 가입자의 급증은 과거 군사정권 치하에서의 역사를 기억하는 국민들이 비슷한 일이 재현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표한 신호”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