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경제는 안중에도 없나

입력 2024-12-05 00:35 수정 2024-12-05 07:16

초유의 비상계엄 사태 직전 만든 4일자 국민일보 초판 신문의 1면 기사 제목은 ‘꽁꽁 언 소비…“과감한 정책 내놓겠다”’였다. 편집국이 이 기사를 1면에 배치한 이유는 대통령실과 정부의 내수·소비 진작 의지에 진정성이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수출 지표는 나쁘지 않지만 국민적 체감은 결국 소비와 연관된다”며 과감한 정책을 속도감 있게 전달하겠다고 했다. 국민일보는 소비 진작 방법을 두고 여당은 소득공제 등의 세제 혜택 확대를, 야당은 지역화폐 활성화를 주장하며 파열음을 내고 있다는 기사도 3면에 배치했다. 여야 갈등에 초점을 맞추긴 했지만 내수 살리기의 골든타임이 지나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차원이었다. 다른 종합일간지 초판 1면 기사도 경제 위기에 관한 것이 많았다. 한 신문은 ‘500대 기업 10곳 중 7곳 “투자계획 없거나 못 세워”’를, 다른 신문은 ‘위기의 삼성, ‘미국발 HBM 악재’’를 1면에 배치했다. 이 기사들은 비상계엄 선포 뉴스에 지면에서 뒤로 밀리거나 사라졌다.

지난 3일 낮 대통령실은 강력한 내수 진작 의지 배경에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와 주문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늦은 밤 대통령의 계엄 선포문에는 경제 현실에 대한 걱정을 찾아볼 수 없다. 윤 대통령은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등 섬뜩한 수사로 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경제’는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고, ‘민생’도 야당의 예산안 삭감을 비판하는 대목에서만 두 번 언급했다. 대통령이 주장하는 반국가 세력의 파렴치함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으나 내수 부진으로 고통을 겪는 대다수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삶과는 관련이 없을 것이다. ‘망국 원흉의 패악질’도 양질의 일자리가 충분치 않아 ‘그냥 쉬는’ 청년들의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을 것이다.

가뜩이나 여러 경제 지표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내년 성장률을 1.9%로, 내후년 성장률을 1.8%로 전망했다. 미국 대선 결과로 수출 관련 불확실성이 확대된 게 주된 배경이다. 자동차 철강 반도체 등 주요 산업 분야가 중국발 공급 과잉 여파에 휘말릴 것이라는 보고서도 나왔다. ‘트럼프 리스크’가 해결된다고 수출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어젠다 세팅에 참여하는 입장에서 당분간 저성장과 수출의 구조적 감소에 초점을 맞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언론 보도가 경제 위기를 해결하기는 힘들겠지만 위기 현실을 끈기 있게 환기하고 대책을 제시하는 일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러 언론이 저성장의 심각성을 다룬 보도를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가 이런 흐름을 다 끊어 버렸다.

시장이 가장 두려워하는 단어는 ‘불확실성’이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는 한국의 불확실성을 극대화했다. 오랜 시간 쌓아온 ‘역동적 민주주의의 모범 국가’(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언급했다) 이미지는 훼손됐고, 이제 한국은 정치적 불안이 심각한 국가로 여겨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양대 정치 진영의 오랜 갈등이 계엄 사태를 초래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한국의 과거 계엄 역사를 상세히 소개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이 나라에 투자하고 싶겠는가. 실제로 외국인은 4일 코스피에서 4000억원 이상 순매도했다. 당분간 불안감이 가라앉을 때까지 시장은 작은 정치 뉴스에도 쉽게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면 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예측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생존 자체를 위협받을 수도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대통령이 본인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국민의 삶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권기석 경제부장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