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책과 길] 각계각층 일기장으로 본 ‘고종 광무개혁’

입력 2024-12-06 03:22
저자는 대한제국을 냉정하게 관조하기 위해 당대를 살았던 5명을 등장시킨다. 1902년 촬영된 윤치호의 가족사진. 휴머니스트 제공

대한제국은 고종이 1897년 자주독립을 지키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황제 국가를 선포하면서 수립된 나라다. 고종은 연호로 광무(光武)를 선포했다. 한나라를 부흥시킨 후한 황제 ‘광무제’에서 따온 것이다. 고종은 조서에서 자신을 광무제에 빗대면서 조선을 다시 일으킨 중흥 군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1910년 경술국치로 패망한 대한제국은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다. 한편에서는 약육강식의 시대를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해 망국을 초래했다는 평가가 존재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제국주의라는 시대적 한계를 지적하면서 근대화 성과에 주목하기도 한다.

저자는 “(대한제국의 시대를) 냉정하게 관조하면서 역사적인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찾고 싶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타임머신을 타고 대한제국의 시대로 돌아가 당시를 느끼고 관찰하고 평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능하지 않다. 대신 저자는 당대를 살았던 다섯 명을 섭외했다. 각자의 정치적 지향점도 달랐고 다양한 계층에 속해 있는 인물들이다. 서구 문물을 앞장서 수용한 대표적 지식인이자 광범위한 활동을 한 정치인 윤치호, 천주교 주교로 대한제국의 권력자들과 교류했던 프랑스 신부 귀스타브 뮈텔, 당시의 역사를 관찰하며 야사(野史)를 남겼던 지식인 정교와 언론인 황현, 그리고 일반 백성의 시각을 전해줄 상공인 지규식이 주인공이다.

조선 교구장으로 임명된 1890년부터 1933년까지 쓴 일기를 남긴 뮈텔 신부(가운데). 휴머니스트 제공

저자가 이들을 섭외한 이유는 분명하다. 모두 기록을 남겼다. 윤치호는 188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60여년에 걸쳐 매일 일기를 썼다. 한국사 전체를 통틀어 현존하는 일기 중 가장 오랜 기간에 걸쳐 쓴 일기다. 사적인 것 외에도 국내외 정세와 동향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뮈텔은 조선 교구장으로 임명된 1890년부터 1933년까지 쓴 일기를 남겼다. 뮈텔은 천주교 포교와 함께 정치에도 깊숙이 관계했던 인물이었던 만큼 조선 정계의 인물 동향과 서양 열강의 움직임을 일기에 담았다. 특히 고종이나 관료들과 나눴던 대화 내용은 ‘조선왕조실록’이나 공식 기록물에는 없는 것들도 많아 당시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정교가 쓴 ‘대한계년사’와 황현의 ‘매천야록’은 그날그날 적은 일기는 아니지만 당대 신문 자료와 기타 공식 기록을 최대한 활용해 서술한 역사서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평민 출신으로 왕실과 기관에 도자기를 납품하던 지규식은 1891년부터 1911년까지 매일 일기를 써 남겼다. 당시 평민들의 인식을 단편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사건들에 대한 다섯 명의 생각은 때로는 일치할 때도 있지만 상반될 때도 많다. 일치할 때에도 미묘한 입장차를 보이곤 한다. ‘성인 남성의 상투를 자르고 서양식 머리를 하라’는 고종의 칙령은 1895년 12월 30일 발표되고 바로 이듬해 1월 1일 시행됐다. 정교는 “단발령은 백성이 가장 따르지 않는 명령이었다. 이로 인해 전국이 가마솥 끓듯 했으며 의로운 무리(의병)가 각 지방에서 봉기하여 관리를 살해했다”고 적었다. 서구화론자로 단발령을 지지하던 윤치호는 “단발령 때문에 서울 안팎이 울면서 이를 가는 흥분의 도가니가 되어 있다”면서도 “한국인이 스스로 각성해 자신의 상투를 자를 만큼 지각이 있게 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내각이 왜 사람들에게 망건을 포기하라고 강요함으로써 불필요하게 민심을 자극하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했다. 뮈텔은 일기에 고종이 어머니에게 일본의 단발령 강요에 불만을 토로한 내용을 소개했다.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님을 설명한 것이다.


책은 다섯 명의 이야기로만 쓰인 것은 아니다. 근현대사 연구자이자 특히 대한제국 전문가인 저자는 연대기적인 서술을 통해 대한제국사를 차근차근 풀어낸다. 다섯 명의 이야기는 여기에 입체감을 더한다. 단발령과 관련해서도 국민적 비난, 특히 고종의 불만에도 당시 김홍집 친일 내각이 단발령에 집착한 이유를 설명한다. “정치적으로는 백성들의 반정부 투쟁을 유발하고, 조선 정부를 위기로 몰아넣어 일본군 증파의 구실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상업적 측면에서는 양복, 모자, 구두 등 일본 상품의 판로를 확장하고, 문화적으로는 조선인들의 유교적 관념과 자존심을 제거해 굴욕감과 패배감을 조장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 뤼순 감옥에 면회 온 두 동생, 그리고 빌렘 신부와 대화를 나누는 안중근. 빌렘 신부는 뮈텔 신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안중근을 면회하면서 미사 집전 2개월 중지라는 징계를 받았다. 휴머니스트 제공

흥미를 끄는 것은 뮈텔의 행보다. 포교를 중심으로 잡고 도움이 된다면 정치와 경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이권에 개입하며 제국주의자의 면모를 보인다. 특히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일이 발생했을 때 뮈텔은 안중근이 천주교 신자임을 부인했다. 재판 과정에서 빌렘 신부가 안중근을 면회했다는 이유로 미사 집전 2개월 중지라는 징계를 내렸다. 안중근의 사형 소식이 전해진 뒤 일기에는 일본인들이 안중근 유족에게 시신을 넘겨주지 않으려는 조치를 두고 “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안중근 문제가 천주교계로 번질까 전전긍긍했다.

저자는 무성 영화의 변사를 자처한다. 개입하지는 않지만 적절한 거리를 두고 평가는 한다. 대한제국에 대한 평가는 우선 “일제의 집요한 침략 공작과 내부 통합의 좌절로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대다수 구성원과 후속 세대에게 국망의 고통과 역사적 부채를 안겨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짧은 존속 기간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구성원들이 고단하지만 주권국가를 향한 치열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역사적 기반을 제공함으로써 훗날 한국인들이 주권국가 회복의 정당성을 되뇌며 주권 회복 운동을 펼칠 수 있는 지평을 열어주었다”고 평가했다.

⊙ 세·줄·평 ★ ★ ★
·대한제국사를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
·기록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9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부담스럽긴 하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