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을 발효해 된장과 간장 등을 만드는 한국의 장(醬)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됐다.
유네스코 무형유산보호협약 정부 간 위원회(무형유산위원회)는 3일(현지시간) 파라과이 아순시온에서 열린 회의에서 장 담그기를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정식 명칭은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Knowledge, beliefs and practices related to jang-making in the Republic of Korea)다.
장 담그기 문화는 장이라는 음식뿐 아니라 다양한 재료를 준비해 장을 만들고 관리·이용하는 과정에서 전하는 지식, 신념, 기술 등을 아우른다.
위원회는 장 담그기라는 공동의 행위가 공동체의 평화와 소속감을 조성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봤다. 위원회는 “장은 가족의 정체성을 반영하며 가족 구성원 간의 연대를 촉진한다”고 평가했다.
된장, 간장, 고추장 등 각종 장은 음식 맛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였고 한 집안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했다. 계절에 따라 장을 담고 보관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대를 이어온 ‘씨간장’을 잘 보관하고, 장독 주변에 나쁜 기운이 들어가지 않도록 금줄을 치고 버선을 거꾸로 붙여놓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조선 왕실에서는 장을 보관하는 창고인 장고(醬庫)를 두고 ‘장고마마’라 불리는 상궁이 직접 장을 담그고 관리할 정도로 장을 중요하게 여겼다.
콩을 발효해 먹는 문화권 안에서도 한국의 장은 독특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장을 담글 때는 콩 재배, 메주 만들기, 장 만들기, 장 가르기, 숙성과 발효 등의 과정을 거치는데 중국, 일본과는 제조법에서 차이가 있다. 특히 메주를 띄운 뒤 된장과 간장이라는 두 가지 장을 만들고, 지난해에 사용하고 남은 씨간장에 새로운 장을 더하는 방식은 한국만의 독창적 문화로 여겨진다.
한국의 장 문화는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측면에서도 가치가 크다.
메주를 소금물에 담가 숙성시킨 뒤 액체를 달여 간장을 만들려면 최소 5∼6개월 이상 기다려야 하는데, 술을 제외하면 이처럼 오랜 시간을 들이는 음식은 많지 않은 편이다. 단맛, 쓴맛, 신맛, 짠맛이 어우러져 구수한 장맛이 나기까지는 수년이 걸리기도 한다.
위원회의 등재 결정에 따라 한국은 총 23건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을 가진 국가가 됐다. 한국은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2001)을 시작으로 가장 최근에 등재된 ‘한국의 탈춤’(2022)까지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총 22건을 보유해 왔다. 2026년에는 ‘한지제작의 전통지식과 기술 및 문화적 실천’이 등재에 도전한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은 “장 담그기는 가족 내에서 전승되어온 집안의 역사와 전통을 담고 있으며, 한국인의 일상 문화에 뿌리를 이룬 유산”이라며 “우리 문화에 자부심을 갖고 소중히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