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쪽지] 가족에 대한 메타인지적 착각

입력 2024-12-07 00:33

가족에 대해서는 메타인지적 착각이 있다고 한다. 메타인지란 ‘인지에 대한 인지’다.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어디까지 알고 어디서부터 모르는지를 파악하는 것을 ‘메타인지’라고 한다. ‘가족에 대해서 메타인지적 착각이 있다’는 말은 ‘가족은 익숙하기에 서로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잘 모른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왜 모를까? 가족은 생활습관이나 버릇 등 여러 측면에서 정작 당사자보다도 더 잘 알게 되는 관계인데 말이다.

가족은 너무 밀접해 제대로 알기 어렵고 소통하기도 어렵다. 밀접한 관계여서 오히려 마음을 제대로 드러내기 힘들다. 걱정시키기 싫어서 자신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못하게 되곤 한다.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이 잘 알고 정작 가족은 모르는 일이 벌어지는 이유다. 또 상대방의 존재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가족 내에서 적절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만 관심을 기울이기 쉽기 때문이다. 가족의 마음이 지금 어떤지보다 그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했는지 안 했는지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 쉬운 것이다. 공동생활에서 가족구성원이 맡은 일을 해놓지 않으면 당장의 생활이 불편해지니까 설거지를 했는지 재활용쓰레기를 버렸는지 등의 책임을 묻게 된다.

가족에 대한 과도한 기대도 문제가 된다. 가족에게는 ‘다른 사람은 다 몰라도 당신만은 내 마음을 알아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를 하기 마련이다. ‘가족이 남보다 못하다’는 말은 가족에게 남보다 기대를 많이 하다 보니 실망해 하게 되는 말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이유로 내가 상대방에게 특별히 이해받고 싶은 만큼 상대방도 나에게 특별히 이해받고 싶은 법이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이 이해받지 못한 것은 잘 알지만 상대방을 이해해주지 못한 것은 의식하지도 못하게 된다. 가족은 인간관계 중 가장 서로의 기대가 엇갈리기 쉬운 관계다.

가족처럼 오래 함께 있는 관계에서 부딪치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상에 부딪칠 기회가 없는 사람은 있어도 나와 절대로 부딪치지 않을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가족은 합의할 일이 많기에 갈등할 기회가 많을 뿐인 것이다. 1년에 한두 번 만나는 사람에게는 교양 있게 양보할 수 있어도 생활이 밀접한 가족지간에는 오히려 양보가 더 어려워진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는 외롭다. 걱정시키기 싫어서, 합의하고 함께 책임져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과도한 기대 때문에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을 멀게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족들이 내가 벌어 오는 돈에만, 내가 해놓은 밥과 빨래에만, 내가 받아온 성적표에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곤 하는 것이다. 만약에 가족이 내가 벌어 오는 돈에만 관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나는 가족이 해놓은 밥과 빨래에만, 자녀가 받아온 성적표에만 관심이 있지는 않은지 살필 일이다. 우리는 가족구성원의 역할 즉 남편, 아내, 자녀의 역할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그 사람 자체 즉 자연인 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사는지도 모른다.

박은미 철학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