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립공원 멸종위기종과의 동행

입력 2024-12-05 00:33

폭염과 잠 못 이루는 열대야를 겪으면서 기후변화를 실감한 올여름이었다. 기후변화를 넘어 우리 삶 속에 들어온 기후위기는 아직 낯설지만 지구온도 1.5도 상승을 억제하기 위한 탄소중립 정책은 어느덧 우리에게 익숙한 시대과제가 돼 있다.

북한산국립공원 백운대에 출몰한 아열대성 곤충 러브버그 떼가 올여름에도 어김없이 나타났다. 놀란 시민들은 방제를 요구했다. 암수가 무리지어 짝짓기 비행을 하며 대량 출몰하기 때문에 혐오감과 불편을 호소했다. 급기야 서울시의회는 ‘대발생 곤충 방제 지원 조례안’을 추진했으나 ‘곤충의 데스노트’라고 반대하는 시민단체에 밀려 상정조차 못했다. 국립공원공단 또한 생태계에 영향을 주는 화학적·생물학적 방제를 시행하지 않는 원칙을 지켰다. 시민 주거지가 아닌 국립공원이 다양한 생물종의 멸종을 막는 최후의 보루인 까닭이다.

국립공원에는 국내 생물종 6만10종 중 2만3777종(39.6%), 멸종위기종 282종 중 191종(68%)이 서식한다. 반달가슴곰, 여우, 산양 등 멸종위기종 대다수는 전 국토의 6.8%인 국립공원에서 보호받고 있다. 멸종위기 동식물에 국립공원은 마치 소도와 같다. 삼한시대 소도는 죄를 짓고 도망 오더라도 보호받던 성역이었다. 멸종위기종은 죄를 짓지는 않았으나 최후의 서식처인 국립공원에서나마 겨우 생존을 유지하고 있다.

멸종위기종을 보호하는 이유는 그들이 사라지면 생태계 균형이 깨지고, 상호작용하는 다른 종들도 생존을 위협받기 때문이다. 생태계 보전과 지속가능한 이용을 설립 목적으로 하는 국립공원공단은 이러한 기후위기의 시대과제를 실행하는 대표적 공공기관이다. 생태계 보전은 물론 반달가슴곰, 여우, 산양 등 멸종위기종 복원사업을 벌써 20년째 수행하고 있는 이유다.

오삼이(KM-53)로 알려진 반달가슴곰은 지리산에서 수도산으로 서식지를 넓혀가다 지난해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다. 반달가슴곰은 지리산 일대에 89마리가 서식하고 있다. 서식밀도가 포화상태에 이르기 전 멸종위기종과 인간의 접촉면을 줄이고, 서식밀도를 과학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들을 보호하고 공존하는 과정에서 탐방객 안전 등 위험을 관리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탐방객 및 거주민과 조우하는 반달가스곰과 붉은여우에게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만 멸종위기종과의 동행은 포기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과제다.

현재 우리나라 보호지역은 육상 17.45%(1만7505.98㎢), 해양 1.81%(7만951.75㎢)다. 지난해 수립된 ‘제5차 국가생물다양성전략’에는 2030년까지 육상·해양 면적의 30%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한다는 다소 도전적인 목표가 담겨 있다. 따라서 다양한 생물종의 생존을 보장하는 국립공원 등 국가보호지역 확대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부처 이기주의를 넘어 보호지역 거버넌스 일원화 방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김경순 국립공원공단 상임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