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성장 동력 되찾기 어려운 한국 경제

입력 2024-12-05 00:34

주요 산업 시장 경쟁력 상실에
내년 경제성장률 1%대 하락

中, 정부가 기술 혁신 주도하고
美, 혁신 인센티브 부여하는데

우리는 기업 도전정신 훼손돼
온갖 규제에 갇힌 채 안주할 뿐

끝이 보이지 않는 정치권의 분열 속에 성장 동력을 잃어가는 한국 경제는 내년 경제성장률이 1%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저성장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 10년간 수출주도형 한국 경제의 성장을 견인한 주요 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한국이 우위에 있던 산업은 중국에 수출시장 점유율을 추월당했고, 중국에 비해 한국이 근소한 열위에 있던 산업은 추격이 불가능할 만큼 격차가 벌어졌다. 철강산업은 이미 중국의 저가 공세에 밀려 생존의 위기에 처해 있으며, 조선산업은 지난 3년간 수주량 1위 자리를 중국에 내어주고 있다. 자동차산업에서도 중국은 지난해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고 자동차 수출국이 됐으며, 미래차 시장에서는 미국과 주도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반도체산업도 첨단 반도체 분야는 한국과 대만의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으며, 메모리반도체 분야에서는 중국의 추격이 거세다.

중국은 미국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내수 시장, 과감한 규제 개혁, 첨단 산업에 대한 막대한 보조금을 통해 기술 자립도와 함께 산업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도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 첨단 산업에 수조원의 보조금을 퍼붓고 있지만 한국은 전무한 실정이다. 보조금에 기반을 둔 중국의 전략적 투자로 경쟁력을 잃어버린 한국 디스플레이산업의 사례를 짚어봐야 한다. 선점 효과와 승자독식 현상이 지배하는 첨단 산업에서는 보조금 정책이 가격 경쟁력과 기술력 확보에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정부 주도의 기술 혁신을 통해 산업 경쟁력 향상을 추구하는 중국과는 달리 미국은 혁신 동기를 부여하는 인센티브 구조를 매개로 글로벌 시장에서 유입된 인재와 자본을 기반으로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도 미국도 공통적으로 구체적인 비전과 함께 일관되게 추진되는 정책을 기반으로 시장의 불확실성을 낮춰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관되지 못한 정책으로 인한 시장의 불확실성은 실패를 회피하고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보수적 기업 문화를 양산해 시장의 혁신성을 훼손할 수 있다. 최근 삼성전자가 직면한 위기의 원인 중 하나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적인 문화가 훼손되고 현실에 안주하는 보수적 문화가 스며든 탓은 아닐까.

미국도 정치 양극화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국가의 미래를 위한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민주·공화당은 하나가 돼 정권교체와 무관하게 일관된 산업 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합리적인 논의가 배제된 채 지지세력의 표를 얻기 위해 급조된 정책은 정책 기조의 일관성을 훼손한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지지세력과 대립각을 세워가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기승전-규제다. 산업계는 꾸준하게 규제 완화를 요구하고, 정부는 그때마다 개선을 약속한다. 하지만 규제 개혁 성과는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천막으로 한정된 야영 텐트의 소재 다양화’ ‘서바이벌 게임장 총기 탄속 개선’ ‘폐교 후 5년 미활용 조건 폐지’ 등 규제로 인해 발생하는 현장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지난 21일 발표한 13개 과제에 담긴 내용이다. 인공지능, 반도체 등의 첨단 산업에 기업이 과감하게 투자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을 위한 기업의 지배구조, 산업 현장의 안전, 법정 근로시간, 전력·용수 수급, 환경 보호, 개인정보 보호 등과 관련된 규제 개선을 시장은 기대했을 것이다.

미국은 네거티브 규제 원칙을 고수하면서 시장의 규제를 최소화하고 새로운 시도가 자유로운 시장을 만들어 첨단 산업의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그리고 첨단 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작용은 핀셋 규제를 통해 최소화하고 있다. 반면 포지티브 규제의 원칙을 통해 지난 시대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법제도의 틀 속에서 제한적인 시도만 가능한 한국에서는 첨단 산업의 성장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 지난 수십년간 한국의 5대 기업 리스트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미국의 경우는 시대의 요구를 담아내는 기업들로 늘 새롭게 채워진다. 일관된 정책 기조와 함께 규제를 개혁해 시장의 불확실성을 낮추고 사회 전반의 인센티브 구조를 바꿔 창의적인 시도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박희준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