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달라야 비범? 성경은 평범함에 주목한다

입력 2024-12-06 03:06
게티이미지뱅크

요즘 말로 ‘권력 투쟁의 희생양’쯤 될 것이다. 사울 왕의 첩 리스바는 남편 실각 이후 한순간에 두 아들을 잃는다. 사울 왕이 기브온 사람을 살육해 기근이 3년간 이어진 걸 안 현직 지도자 다윗 왕이 그의 일곱 아들을 ‘속죄양’으로 넘겨서다. 리스바의 친자 2명을 포함한 사울의 자녀들을 넘겨받은 기브온인은 이들을 나무에 매달아 공개 처형한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세인트앤드루스대 등에서 성서학을 강의한 저자는 남편에 아들까지 잃은 상황 속 리스바의 반응에 주목한다. 리스바는 처형장서 밤낮을 지내며 각종 새와 들짐승으로부터 7명의 시신을 보호한다. 그의 피맺힌 농성은 6개월여 만에 막을 내린다. 소식을 들은 다윗 왕이 시신을 거둬 사울 왕 가문의 유해와 함께 매장해 이들의 명예를 지켜줬기 때문이다.(삼하 21:1~14)

저자는 아무런 희망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내 예상 외의 결과를 가져온 리스바를 “성경 속 숨은 주역들”로 명명한다.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다 믿음으로 특정한 때 비범한 일을 행한 평범한 이들이야말로 ‘하나님 나라의 충성스러운 종’이라는 이유다.


책에서 저자는 리스바 이야기를 비롯해 ‘일상 속 평범함’을 다룬 성경 본문 33개를 해설한다. 성경 본문을 33개 채택한 건 성탄절과 부활절 등 주요 절기를 제외한 ‘연중 시기’(Ordinary Time)가 한 해 52주 중 33주 정도를 차지해서다. ‘평범한’이란 단어가 있어 일견 단조로운 일상을 뜻하는 표현 같지만, 원어를 살피면 그 의미가 달라진다. 연중 시기의 라틴어 원어는 ‘템푸스 오디나리움’(tempus ordinarium)으로, 직역하면 ‘측정된 시간’이다. 연중 시기, 즉 평범한 일상도 “제대로 인식하며 구분해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33개 본문 속에는 평범한 일상에서 하나님을 만나 비범한 일을 이뤄낸 인물이 여럿 소개된다. 그리스도의 출현을 기다리다 그를 직접 대면한 시므온과 안나, 물고기 두 마리와 떡 5개를 나눠 ‘오병이어 기적’의 마중물이 된 소년…. 이들 중 평범함의 극치는 예수 그리스도다. 하나님의 아들인 그분은 자신의 비범함을 ‘일상의 하나님’으로 드러내는 방식을 택했다.

평범한 일상을 예배 삼으라는 성경 본문도 적잖다. 저자는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란 말씀을 들어 “일상의 하나님은 우리를 주일만이 아닌 매일 빛나는 일상의 기독교인으로 부른다”고 강조한다. 매일의 삶에서 일상 속 하나님을 마주할 때 평범함이 비범함으로 변한다는 이야기다.

책을 관통하는 명제는 “하나님은 평범함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우리를 비범함으로 부른다”라는 것이다. 일종의 역설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비범함의 전제는 평범한 일상에서 찾을 수 있다”고 전제한다. 그렇기에 기독교인이라면 응당 “성경 전체에 흐르는 평범함을 묵상하며 담대하게 ‘평범한 사람’이 되는 법을 익히라”고 권한다.

성서학적 관점에서 평범함을 조명하며 그 가치를 재정의한 책이다. 새로울 것 없는 일상을 무미건조하게 여기거나 ‘남달라야 살아남는다’는 강박을 가진 이들에게 필요한 ‘현대인의 복음서’라 할 만하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