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10㎿ 풍력터빈 도전… 韓 해상풍력 새바람 일으킨다

입력 2024-12-05 03:52 수정 2024-12-05 03:52
경남 사천 유니슨 공장에서 성능 시험 단계를 거치고 있는 10㎿급 해상풍력터빈 발전기 모습. 발전기는 풍력발전기의 블레이드가 만들어낸 회전에너지를 전력으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유니슨 제공

국내 기업의 풍력 터빈 시장 점유율은 매년 하락세다. 2019년 절반을 넘겼던 점유율은 지난해 13.3%에 그쳤다. 점유율 하락의 원인으로는 풍력 터빈의 대형화 흐름에 뒤처진 탓이 꼽힌다. 터빈을 대형화하면 터빈당 전력생산량이 늘어나고, 발전기 대수와 유지보수 비용을 줄일 수 있어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은 아직 터빈 대형화 흐름에 올라타지 못하고 있다. 해외 업체 중에서는 16㎿급 풍력발전기 개발에 성공한 업체도 나왔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8㎿급 발전기가 최대다. 이런 가운데 국내 최대 규모인 10㎿급 풍력터빈을 개발 중인 강소기업이 있다. 2004년 첫 국산 750㎾급 풍력발전기를 개발한 이래 국내 풍력터빈 산업을 선도해온 유니슨이 주인공이다.

지난달 28일 유니슨 본사와 공장이 위치한 경남 사천을 찾았다. 공장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거대한 팬과 같은 모양의 발전기(제너레이터)가 시선을 압도했다. 발전기는 풍력발전기의 블레이드가 만들어낸 회전에너지를 전력으로 바꾸는 역할을 하는 핵심 부품이다. 공장에서는 발전기 시제품 2대를 이용한 자체 성능 시험이 진행 중이었다.


유니슨은 2018년 대형 풍력터빈에 필요한 직접구동형 발전기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기존에 주로 4㎿ 모델들을 만들어온 유니슨이 해상풍력에 투입할 10㎿ 모델을 개발하는 것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10㎿ 모델의 가장 큰 특징은 회전 속도를 높이는 역할을 하는 기어(Gear)박스를 제외하고 직접 구동되는 영구자석 발전기를 장착했다는 점이다. 기어박스를 제외하면 구조가 단순해져 고장을 줄일 수 있다. 먼바다에 설치돼 수리나 부품 교체가 어려운 해상풍력 특성상 유지·보수 건수를 줄이는 것이 우선이라 판단한 것이다. 박인하 WTG(풍력터빈)생산팀 부장은 “거센 바람과 폭풍을 버티며 30년을 돌아갈 터빈 제작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터빈 주요 부품도 다중화 시스템을 적용해 부품이 고장 나더라도 정지 시간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대신 회전 속도를 높여주는 기어박스가 없으면 발전기 크기를 키워야 하기 때문에, 주력 모델의 19배 크기의 발전기를 새로 제작해야 했다. 임민수 생산관리팀 부장은 “규모가 커지며 도면이 요구하는 가공 공차(허용되는 편차)를 만족할 업체가 국내에 없어 해외 업체를 수소문해야 하는 등 애로사항이 많았다”고 말했다. 더 높은 위치에 설치될 터빈에 불어올 더 강한 힘의 바람을 견디기 위해 구조물도 대형화했다.


유니슨은 제작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도 고민을 거듭했다. 10㎿급 해상풍력터빈 실증 국책과제에 선정돼 받은 정부 지원이 큰 도움이 됐지만, 예상치 못한 변수들에 대비해야 했다. 1호기 제작 과정에서는 중국발(發) 영구자석 가격 상승으로 평소 가격의 2~3배에 달하는 재료비를 부담해야 했다. 현재 진행되는 성능 시험 과정에서는 사용된 전력을 회생시키는 백투백(back-to-back) 시험 설비를 통해 전력 사용량을 10분의 1 수준으로 절약하고 있다.

유니슨은 풍력터빈 제조 및 설치, 풍력단지 조성, 유지보수 등을 한 번에 제공하는 통합 솔루션 제공을 강점으로 내세워 풍력발전 시장을 공략해왔다. 다만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국내 시장이 최근 수년간 주춤하고 남은 물량마저 외국산 풍력 터빈이 잠식하며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지난해 진행된 해상풍력 고정가격 계약 입찰에서 유니슨은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럼에도 유니슨은 국내 최대급인 10㎿급 풍력터빈 개발이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해 내로 발전기의 UL 부품인증시험 절차를 완료한 뒤 터빈 시제품을 내년까지 완성할 계획이다. 한전과 발전공기업이 주도하는 해상풍력 프로젝트를 10㎿ 모델의 주요 공급처로 삼겠다는 목표다. 지난 8월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해상풍력 입찰 로드맵에 따르면 내년 상반기부터는 공공주도형 별도 입찰 시장이 마련될 예정이다.

다른 곳에 눈 돌리지 않고 오직 풍력 발전 하나에 진심인 기업. 유니슨에 대한 업계의 대체적인 평가다. 박 부장은 “직원들의 자부심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10㎿급 풍력터빈 개발을 완수하겠다”고 말했다.

“AI발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급증… 전기는 차세대 먹거리”
조환익 유니슨 회장
‘전기의 산업화’ 필요성 강조


조환익(사진) 유니슨 회장이 ‘전기의 산업화’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현재 한국전력 통제 위주의 전력 운영 체제가 수급 불안 등 각종 한계를 드러낸 데다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전기 산업의 ‘슈퍼 사이클(초호황)’에 우리 정부와 기업이 올라타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어 데이터센터가 급증하고 전기차 사용량이 늘면서 전력 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그런데 국내 전력망은 포화 상태라서 피크 전력을 잘 관리하는 수단과 기술이 곧 돈이 되는 세상이 왔다는 게 조 회장의 견해다.

산업통상자원부 차관과 한전 사장을 지낸 잔뼈 굵은 ‘산업통(通)’인 조 회장은 지난 2일 과천 유니슨 서울사무소에서 국민일보와 만나 “한국 산업계는 반도체와 바이오를 이을 차세대 먹거리가 마땅치 않다”면서 “전기가 돌파구를 열 새로운 산업”이라고 밝혔다. 조 회장은 이미 유럽과 중국에서는 전기 산업화 시대가 열린 상황에서 한국이 향후 10년의 골든타임을 놓치면 영원히 산업화 기회를 상실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기를 생산하고 수송하고 수요를 관리하는 전기 산업 규모는 세계적으로 30조 달러에 달한다. 우리 돈으로 4경이 넘는 시장이다. 배터리와 이모빌리티(전기를 활용한 이동수단) 등 연관 산업까지 합치면 100조 달러의 시장을 형성한 것으로 IEA는 추정한다.

국내에서도 수요 측면에서 사업성이 커지고 있다. 예를 들어 정보통신기술(ICT)을 이용해 분산된 에너지 자원을 통합하고 발전소처럼 관리하는 가상 발전소(VPP)나 전기차를 전력망과 연결해 배터리의 남은 전력을 이용하는 V2G(Vehicle-to-grid) 기술, 에너지를 미리 저장했다가 전력이 필요한 시기에 사용하는 에너지저장시스템(ESS) 등 전기 사용의 효율성을 높이는 사업화가 점진적으로 진행 중이다. 조 회장은 “정부와 한전은 기존 전력망에 새로운 민간 플레이어가 들어올 수 있도록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방해야 한다”면서 “전기요금 인상 추세 속에 수익성이 보장된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SK 등 대기업과 수많은 스타트업이 조금씩 뛰어들고 있는 바로 지금 정부가 법과 제도 등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전을 민영화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민간 자본이 전기를 사고파는 시장에 진입하도록 길을 넓혀주고 동경전력이 10여개 도매 업체와 경쟁하는 일본 전력 산업을 벤치마킹해 우리도 시장에서 합리적인 가격이 형성되도록 하자는 취지다.

전기 산업화가 규모의 경제를 이루면 건설과 기자재, 수요 관리 서비스는 물론 갈등을 중재하기 위한 법률과 컨설팅까지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가 생길 수 있다. 조 회장은 “국내 전력망 수요 폭발로 변압기와 전선 등 업체가 ‘로또’를 맞은 것처럼 전기 산업화로 생산과 유통, 소비 전반에 걸쳐 민간 자본이 시장에 진입하면 새로운 산업군이 또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외국 자본의 무분별한 생태계 침투는 경계할 대목이다. 그는 “풍력 터빈 국산화에 최초로 성공한 유니슨은 한때 시장의 40% 이상을 장악했지만 베스타스와 지멘스, 중국 업체가 물량 덤핑으로 하나둘 들어오면서 지난해 단 한 건도 수주하지 못해 고사 직전에 내몰렸다”면서 “정부가 핵심기기 등 공급망 국산화를 가속하는 데 전폭적으로 보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천=윤준식 기자, 김혜원 기자 semipr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