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인공지능(AI) 개발에 필요한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중국 수출 통제를 발표하며 정권 막바지에 첨단기술 분야 중국 견제의 대못을 박았다. 미 상무부는 수출 통제 배경에 대해 ‘중국공산당’까지 거론하며 “중국의 군사용 반도체 능력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라고 명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앞서 중국에 대해 ‘관세 폭탄’을 선포한 바 있다. 미국 국내 정치에서는 최대 정적인 두 사람이 중국 견제에서는 ‘원팀’처럼 협력하는 모양새다.
상무부 산업안보국은 2일(현지시간) “차세대 첨단무기와 군사적으로 중요한 AI 및 첨단 컴퓨팅에 사용될 수 있는 첨단 노드 반도체와 관련해 중국의 생산 능력을 억제하기 위해 일련의 규칙을 발표한다”고 밝혔다. 이 중 핵심은 AI의 필수품인 HBM 수출 통제로 오는 31일부터 적용된다.
상무부는 이번 수출 통제에 ‘해외 직접 생산품 규칙(FDPR)’을 적용했다. 이 규칙에 따르면 미국산 소프트웨어·장비·기술을 활용한 제품이라면 미국 밖에서 생산돼도 수출 통제를 적용받는다. 한국 기업도 영향을 받는 것이다.
상무부는 HBM뿐 아니라 중국이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반도체 제조 장비 24종과 소프트웨어 도구 3종에 대한 신규 수출 통제도 발표했다. 상무부는 특히 중국의 군 현대화와 연관된 기업 140개의 블랙리스트를 발표하며 해당 기업들에 첨단 반도체와 관련 장비를 수출하면 안 된다고 못 박았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 관계 단절은 하지 않으면서도 안보와 직결된 반도체, AI, 양자컴퓨팅 등에선 중국을 압박해 왔다. 2022년 8월에는 그래픽처리장치(GPU) 등 반도체 제품을 군사용으로 전용할 위험이 있다며 엔비디아 등에 관련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금지했다. 지난 9월에도 양자컴퓨팅과 첨단 반도체 핵심 기술을 수출 통제 대상으로 지정하는 제도를 신설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여 왔다.
상무부는 이날 “중국공산당의 반도체 전략은 중국의 군사 현대화, 대량살상무기 개발, 통제 의제를 더욱 강화해 초국가적 퇴행을 촉진하고 인권을 억압하며 안보를 위협하고 미국과 동맹국의 가치를 훼손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더 강한 중국 견제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이 수출 통제로 중국을 압박했다면 트럼프의 무기는 관세다. 대선 기간 중국산 제품에 6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한 트럼프는 지난달 25일에는 중국산 제품에 기존 관세에 더해 10%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고 엄포를 놨다.
미국의 수출 통제에 대해 중국 상무부는 “중국과 제3국 간 무역에 간섭하는 전형적인 경제적 강압 행위로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의 조치에 대한 보복으로 3일부터 중국산 갈륨과 게르마늄 등 민간·군수 이중용도 품목에 대한 미국 수출을 금지키로 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베이징=송세영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