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연말에 재개봉 영화라니

입력 2024-12-04 00:35

연말 극장가는 재개봉 영화가 대세다. 4일 ‘나이브스 아웃’을 필두로 ‘포레스트 검프’ ‘매트릭스’ ‘아키라’ ‘공각기동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등이 다시 극장에 걸린다. 과거 개봉했을 때처럼 대규모 흥행이야 어렵겠지만 누군가에겐 그 시절 극장 나들이를 떠올리는 즐거운 추억여행이 될 법하다. 하지만 쏟아지는 재개봉 영화는 낭만으로만 치부하기엔 어렵다. 이면에 한국 영화산업의 절박함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극장들이 재개봉 영화로 스크린을 채우는 건 신작 영화가 그만큼 없다는 말이다. 원래 연말은 영화업계 성수기였다. 큰 흥행을 할 만한 블록버스터 혹은 텐트폴 영화가 이맘때 배치된다. 하지만 올해는 오는 25일 개봉하는 ‘하얼빈’ 정도가 대작의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다. 이 영화는 제작비가 300억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안중근 의사를 소재로 삼았고 현빈, 박정민, 조우진 등을 전면에 배치했다. 메가폰은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이 잡았다. 영화계에선 이 영화의 흥행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내년 영화 투자에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영화산업은 급격하게 변했다. 그 변화는 영화계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극장을 찾는 관객이 줄었고, 이는 새로운 영화에 대한 투자가 줄어드는 결과로 연결됐다. 최근 영화계 분위기는 투자에 극도로 소극적인 분위기다. 흥행이 확실히 보장되지 않으면 투자에 나서지 않겠다는 것이다. 관객도 재미가 보장된 영화에만 돈을 쓰겠다는 분위기다.

결국 영화계에도 ‘양극화’가 현실화했다.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한국 영화 중 100만 관객 이상을 기록한 영화는 연간 30편 안팎이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19년 ‘극한직업’이 1396만 관객으로 1000만을 돌파했고 ‘기생충’(858만), ‘엑시트’(792만), ‘백두산’(529만), ‘봉오동 전투’(405만) 등이 뒤를 받쳤다. 박스오피스 25위까지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는 판이 바뀌었다. 2022년과 지난해에는 100만 관객 이상 영화가 14편으로 10편 이상 줄었다. 반면 1000만 영화는 꾸준히 나왔다. 2022년 ‘범죄도시2’(1312만), 지난해에는 ‘서울의 봄’(1153만)과 ‘범죄도시3’(1046만) 등 2편의 1000만 관객 영화가 나왔다. 1000만 관객 영화는 늘고 100만 이상은 줄어든 것이다. 올해도 비슷하다. 3일 기준으로 ‘파묘’(1151만), ‘범죄도시4’(1100만) 등 1000만 관객을 넘은 영화는 2편이 있다. 하지만 100만 관객을 넘긴 영화는 여전히 14편에 머문다.

텐트폴 영화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슬리퍼 히트(Sleeper hit)’가 있다. 흥행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대박이 터진 영화를 일컫는다. 주로 저예산 영화나 중간 규모 영화에서 많이 나온다. 이런 영화들은 기존의 클리셰를 벗어나 신선한 주제와 접근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신인 감독과 배우들의 등용문 역할도 한다. 투자하는 입장에서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지만 금액이 적다 보니 실패에 대한 부담도 크지 않다. 자연스레 영화는 다양해진다. 이제는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봉준호 감독의 첫 장편영화 연출작 ‘플란다스의 개’ 제작비는 약 10억원으로 알려졌다. 작은 시작이 없었다면 ‘기생충’도 나오지 못했을 수 있다.

한국 영화산업의 선순환 구조를 위해 중간 영화의 활성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문화체육관광부도 중간 영화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 지원으로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결국 영화관에 갈 이유를 만드는 건 영화인들의 몫이다.

김준엽 문화체육부장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