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40년대(Hungry Forties)’라는 말을 낳은 유럽의 대기근은 1840년대 창궐한 감자 역병에서 비롯됐다. 페루의 감자마름병 진균이 건너가 아일랜드 감자밭을 초토화하면서 100만명이 굶어죽고 100만명이 이민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그때 먹을 것을 찾아 신대륙으로 이주한 이들의 후손이다. 10도 이상 기온과 90% 이상 습도에서 급속히 증식하는 이 균은 병징이 잎에서 나타난다. 잎이 오그라들고 담황색으로 변하면서 줄기의 감자까지 썩어들어 가는데, 전염성이 매우 강한 이 현상을 ‘감자 부패(potato rot)’라 불렀다.
유럽 기근 직후인 1854년 미국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대표작 ‘월든’에서 복잡한 사고를 멀리하는 세태를 비판하며 “(아일랜드를 식민지로 거느린) 영국은 감자 부패를 치료하려 저렇게 애를 쓰는데, 그보다 광범위하고 치명적인 ‘두뇌 부패(brain rot)’를 우리는 왜 방관하는가”라고 했다. 2년간 숲에서 혼자 사색하며 이 책을 쓴 소로는 미국적인 삶을 거부한 사상가였다. 산업화의 물질주의를 벗어나 실험적 은둔의 삶을 살면서 당대의 정신적, 지적 퇴행을 감자에 빗대 뇌가 썩어가는 현상이라 일컬었다.
동시대인에게 반향을 얻지 못했던 그의 비유는 두 세기가 지나 대중적 용례를 찾았다. 2000년대 트위터 유저들이 연애 리얼리티 쇼를 두뇌 부패 콘텐츠라 부르더니, 틱톡을 거쳐 숏폼의 시대가 되면서 흥미 영상의 홍수 속에 자란 세대가 ‘혹시 뇌가 썩진 않을까’ 싶었는지 이 말을 쓰기 시작했다. 결국 옥스퍼드대학이 뽑은 올해의 단어가 됐다. 저품질 온라인 콘텐츠와 그것을 과잉 소비하는 현상을 우려하는 표현으로 자리를 잡았다.
서울대가 신입생 전원의 글쓰기 시험을 치르겠다고 나선 것도, 올해 ‘텍스트 힙’ 독서 열풍이 분 것도 배경에는 두뇌 부패 우려를 낳은 영상 과잉 문화가 있다. 유럽의 감자 부패는 균이 침투하기 좋은 단일 품종만 재배한 탓이 컸다고 한다. 두뇌 부패도 영상 일변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루트로 정보를 접하는 게 좋은 예방책이 될 듯하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