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 위증에 관여 증거 없어
무죄라는 이 대표의 1심 선고
확정되면 모방 범죄 성행할 듯
위증 유도 변론요지서 전달이
방어권 행사로 인정받으면
법정엔 허위증언 넘쳐나고
위증교사범 처벌 어려워져
위증 자백과 녹음 파일에도
증거 없다는 1심 재판부 판단
상급심은 어떻게 평가할까
무죄라는 이 대표의 1심 선고
확정되면 모방 범죄 성행할 듯
위증 유도 변론요지서 전달이
방어권 행사로 인정받으면
법정엔 허위증언 넘쳐나고
위증교사범 처벌 어려워져
위증 자백과 녹음 파일에도
증거 없다는 1심 재판부 판단
상급심은 어떻게 평가할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위증교사 사건은 검찰의 항소로 2심으로 넘어가게 됐다. 1심 재판부는 법정에서 위증한 김모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지만 이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는 무죄를 선고했다. 위증은 있는데 위증교사는 없는 기이한 판결이다. 김씨는 이 대표의 부탁을 받고 위증했다고 자백했는데 재판부는 이 대표가 구체적으로 관여한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이 상급심에서도 유지된다면 모방범죄가 성행할 것 같다. 법정에서 위증할 구체적인 내용에 관여하지만 않으면 위증교사로 처벌받지 않을 테니까.
이 대표는 변호사 시절인 2002년 6월 검사 사칭 혐의로 체포됐다. 분당파크뷰 특혜 의혹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자신의 사무실을 찾아온 KBS 최모 PD가 검사인 척 김병량 당시 성남시장과 통화하려고 하자 미리 사칭할 검사 이름과 질문할 내용을 최 PD에게 알려주었다. 통화 내용을 곁에서 듣고 추가 질문할 내용을 메모해서 넘겨주기도 했다. 이 대표는 검사 사칭 공범으로 기소돼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2018년 경기도지사 선거 TV토론회에서 다시 거론됐다. 해명에 나선 이 대표는 “PD가 사칭하는데 제가 인터뷰 중이었기 때문에 그걸 도와주었다는 누명을 썼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누명을 썼다’는 표현이 허위사실 공표라고 보고 이 대표를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이때 이 대표를 위해 증언한 사람이 김 전 시장의 수행비서를 지낸 김씨였다. 김씨는 법정에서 ‘최 PD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고 이 대표를 주범으로 몰기로 협의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법원은 ‘누명을 썼다고 생각할 만한 사정이 있었다’는 이 대표의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백현동 수사 과정에서 통화 녹음파일이 발견되자 이 대표를 기소했다. 유창훈 서울중앙지법 영장담당 판사는 체포영장의 국회 통과에도 불구하고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시켰지만 위증교사 혐의만큼은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유죄 선고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1심 재판부는 위증교사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법리를 내세웠다. 그런데 통화 녹음을 들어보면 이 대표는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김씨에게 ‘성남시와 KBS가 이 대표를 주범으로 몰기로 여러 차례 협의나 논의가 많았다는 취지의 증언을 해 주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회유했다. 김씨가 “당시엔 선거 캠프에 나가 있어서 알지 못한다”고 하자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해주면 되지 뭐”라며 김씨를 압박했다. KBS와 성남시가 이 대표를 주범으로 몰기로 한 합의는 밝혀진 바가 없다. 이 대표 스스로도 김씨에게 “증명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대표로부터 전달받은 변론요지서와 증인신문서를 숙지한 김씨는 법정에 나와 “고소 취하를 놓고 KBS 고위관계자와 협의 중이라는 말을 시장님으로부터 직접 들었다”고 허위 증언했다. 재판부는 김씨의 이 발언조차 이 대표의 직접적인 관여로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대표가 변론요지서와 증인신문서를 보낸 것은 ‘통상적인 증언 요청의 경우와 다르지 않고 방어권 행사의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이것이 판례로 굳어진다면 위증교사범들에게 법망을 빠져나갈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이다. 위증을 유도하는 변론요지서와 증인신문서를 간접적으로 전달하면서 “기억나는 대로 말해 달라”는 말만 잊지 않는다면 처벌받지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법원은 재판 도중 사건 관계자들이 말을 맞추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대북송금 사건으로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보석 기간 중 생일파티를 열어 쌍방울 관계자 등을 초대하자 수원지법은 보석 조건을 어겼다며 과태료를 부과했을 정도다.
재판부는 또 다른 무죄 이유로 증거 불충분을 들었다. 위증교사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증명이 있어야 하는데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로는 유죄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대표의 부탁으로 위증을 했다는 자백이 있고, 두 사람의 통화를 녹음한 파일도 공개됐는데 어떤 증거가 더 필요하다는 건지 의아하다. 증거가 불충분한 것이 아니라 증거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른 것은 아닐까. 이래서 재판은 삼세판 해야 하나 보다. 항소심은 어떤 판단을 내릴지 궁금하다.
전석운 논설위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