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생애 첫 콘서트

입력 2024-12-04 00:33

세상엔 특별한 오빠가 있다. 혈연, 학연, 지연 어디에도 연결점이 없지만 긴 세월에 걸쳐 내적 친밀감을 두텁게 쌓은 각별한 존재가. 엄마에게도 그런 오빠가 있었으니 트로트 황제라 불리는 그는 소녀 시절 감성과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청춘의 표상이었고, 희로애락을 나누며 함께 늙어가는 인생 지기 동무였다. 그가 58년의 가수 생활을 마무리하며 은퇴 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을 접한 엄마는 못내 아쉬운 기색을 엿보였다.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의 공연을 관람할 기회였기에, 콘서트를 보내드리겠노라 엄마에게 호언장담했다.

은행 앞에서 밤새 줄을 서며 교복 안주머니에 넣은 현금을 수차례 확인해보던 중학생의 티케팅 경험은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됐다. 세상은 온라인 티케팅이 보편화된 곳으로 거듭 진화했다. 얼굴도 잘 보이고 노래도 잘 들리는 가장 좋은 좌석에 앉혀드리고 싶은 바람은 헛된 희망사항에 가까웠는데, 다 큰 자식들이 부모를 위하는 마음에는 순위가 없을 뿐더러 그들의 온라인 티케팅 실력은 나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보이지 않는 전쟁터에 참전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현실을 짐작도 못하고 만만하게 도전했던 상반기 콘서트 티케팅은 단 3분 만에 매진되면서 실패로 끝나버렸다.

치열한 경쟁 끝에 위풍당당한 효녀, 효자로 거듭난 이들은 티케팅 성공 노하우와 보람찬 후기를 만천하에 공개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시험족보처럼 살펴 읽고 하반기 콘서트는 기필코 성공하리라 의지를 불태웠다. 인터넷이 제일 빠르다는 동네 PC방을 수소문하고 신속, 정확하게 마우스를 누르는 연습을 하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대망의 그날, 숨 막히는 1분을 보낸 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오빠 만날 준비 됐어요?” 뜬금없는 소리에 어리둥절하던 엄마가 뒤늦게 눈치를 챘다. 수화기 너머로 그녀의 기쁨이 깨알같이 쏟아진다. 삶의 애환을 나누던 그의 노래를 들으며 엄마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