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주의·정치세력 결탁… 먹구름 짙어지는 美 기독교

입력 2024-12-04 03:05
미국의 기독 학부모들이 지난 4월 미국 워싱턴에서 성혁명 물결에 반대하는 금식기도회에 참석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허보이스무브먼트 제공

청교도 정신 바탕 위에 세워진 미국이 과거와 크게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성혁명을 옹호하는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가 범람했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세력들은 특정 정치세력과 과도하게 결탁하며 기독교적 가치를 퇴색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기독교의 앞날이 그 어느 때보다 어둡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PC주의 범람, 바이든 시대

바이든 행정부는 집권기간 내내 PC주의를 표방했다. 그 중심에는 성혁명이 있었다. 대체로 동성애자와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의 권익 향상을 표방했다. 대표적으로 공립학교에 생물학적 성과 상관없이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행정지침을 내렸다.

이로 인해 이른바 ‘성중립 화장실’이 설치됐다. 동성애 등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긴 책의 학교·공공도서관 비치를 금지하는 조치도 내렸다. 동성애·양성애 커플의 자유로운 입양 허용을 지원하거나 백악관 방문시 성별을 인식할 수 있는 호칭 칸에 성별 중립을 의미하는 ‘Mix’를 추가했다. 나아가 행정부 내 주요 직책인 장관이나 차관보 등에 동성애자나 트랜스젠더를 임명하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이런 기조로 인해 미국 사회 전반적으로 성소수자들이 전면에 나서는 모습이 나타났다. 지난 여름에는 미국 중심인 뉴욕에서 세계 최대 성소수자 축제인 뉴욕프라이드 행진이 열렸다. 여기에 약 3만 명에 달하는 성소수자들이 참가했고 관람객도 250만 명이 넘었다. 뉴욕에 이어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에서도 비슷한 행사들이 잇따라 개최됐다. 미국의 주요 성소수자 단체들은 정치에도 적극 개입했다. 대표적 단체인 ‘휴먼 라이츠 캠페인’은 민주당에 수백억 원에 달하는 후원금은 물론 정치 광고와 유세 지원 등을 행했다.

이용희 에스더기도운동 대표는 3일 “오바마 행정부 시절부터 이런 경향성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바이든 시절에 본격화했다”면서 “유럽의 성혁명 물결에 동질화하는 경향성이 뚜렷해졌다. 이같은 경향성에 대한 비판은 시대착오적이거나 악으로 치부되곤 했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명목 하에 미국의 전통적 기독교 가치가 위협을 받는 상황까지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정치와 결탁, 복음주의 그림자

바이든 시대의 경향성에 대한 반작용도 일어났다. 이는 복음주의를 표방한다는 기독시민단체들과 일부 주들을 중심으로 표출됐다. 미국 기독교인 학부모 단체는 워싱턴과 국회의사당을 비롯한 50개 주에서 동성애 교육 등에 반대하는 금식 기도회를 개최했다. 웨스트버지니아주, 와이오밍주, 유타주 등 미국 주요 지역에선 성혁명을 방지하고 기독교 신앙을 수호한다는 법안이 잇따라 통과됐다. ‘미성년자 성전환 금지법’, ‘종교자유 보호법’ 등이 대표적이다.

이 세력들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를 적극 지지했다. 트럼프도 이에 호응하며 견고한 지지층으로 끌어들였다. 문제는 이들이 특정 정치세력과 과도하게 결탁하면서 역설적으로 또 다른 기독교적 가치를 퇴색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며 불법 이민자 추방이나 기후위기 대응 후퇴, 주변국 배척 등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복음주의 세력이 트럼프의 이 같은 기조까지 호응 또는 방관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우를 범한다는 지적이다.

권수영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이 외치는 미국 우선주의마저 미국의 기독교적 가치를 지켜내는 신조처럼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라면서 “미국인들만이 잘 먹고 잘 사는 일이 신앙으로 세워진 나라를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일이라 믿는다면 이는 분명 깨뜨려야 할 반신앙적 신조”라고 강조했다.

미국 기독교 기상도 ‘흐림’

미국 기독교의 전망이 그 어느 때보다 흐리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성혁명의 거센 도전과 복음주의 세력의 잘못된 정치적 결탁 등은 국내외적으로 미국 기독교의 입지를 급격히 축소시키고 있다는 지적이다. 길원평 한동대 석좌교수는 “한때 전 세계로 선교사를 가장 많이 보내며 리더 역할을 했던 미국 기독교가 지금은 여러 어려움을 겪으며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미국 기독교 세력이 자신들의 국가를 유럽과 같은 경향성에서 벗어나도록 지속적으로 견인하고, 특정 정치세력에게 맹목적으로 동조하지 않는 건전한 방향성을 지향한다면 다시금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경식 기자 k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