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LG, 현대자동차 등 국내 주요 그룹이 잇따라 자사주 소각, 배당 확대 등 주주환원책을 내놓으며 정부 주도의 기업 밸류업(가치 제고) 공시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계획을 내놓지 않은 대기업들이 대부분이다.
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29일까지 밸류업 계획을 공시한 코스피·코스닥 상장사는 60곳이다. 예고공시까지 더하면 모두 85곳으로 전체 상장기업의 3.2%에 불과하다. 밸류업 프로그램은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상장 기업 가치가 실제보다 낮게 평가되는 현상)’ 해결책으로 지난 1월 내놓은 정책이다.
현재까지 10대 그룹 중에서 SK·LG·현대자동차·롯데 등 4개 그룹이 본 공시를 마쳤다. LG그룹은 주요 대기업 중 이례적으로 전 계열사들과 밸류업 계획을 함께 발표했다. 지주사인 ㈜LG를 비롯해 LG전자, LG에너지솔루션, LG생활건강, LG화학,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LG유플러스 등 8개사가 밸류업 공시를 완료했다. ㈜LG는 5000억원 규모 자사주를 2026년까지 전량 소각하기로 했다.
SK그룹은 SK하이닉스, SK스퀘어, SK네트웍스, SK이노베이션, SK, SK텔레콤 등 6개사가 밸류업 본 계획을 공시했다. SK㈜는 지난 10월 경영 실적과 상관없이 최소 주당 5000원의 배당금을 매년 지급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주당 연간 고정배당금을 기존 1200원에서 1500원으로 25% 상향한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현대자동차 등 3개사가 밸류업 본 계획을 내놨고, 위기설이 불거졌던 롯데그룹도 밸류업에 동참하기로 했다.
그러나 시총 1위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대기업들은 추가적인 밸류업 공시가 미진한 상황이다. 삼성전자는 밸류업 방안을 검토 중으로 내년 중 공시할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10대 그룹 중에선 삼성전자를 포함해 HD현대, 한화, CJ, GS, 신세계가 아직 밸류업 공시를 하지 않은 상태다.
지수에 미치는 영향이 큰 대형 시총 종목 참여가 지지부진하면서 정부의 밸류업 정책이 힘을 받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기업들도 할 말은 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기업들 입장에서 유동성 확보 등 생존 전략이 우선시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산업계 관계자는 “실적 악화로 인력 구조조정을 하는 마당에 주가까지 신경 쓰기에는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기업들 사이에서 밸류업 공시가 주주환원책으로 좁게 인식되고 있다는 점도 공시 저조 요인으로 꼽힌다. 밸류업 공시에는 주주환원뿐 아니라 사업 체질 개선, 무형자산 투자 등도 포함이 돼 있지만 주요 기업의 밸류업 계획에는 이에 대한 내용이 거의 담기지 않고 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금융회사와 달리 제조업, 정보기술(IT) 플랫폼 기업의 경우 투자나 신사업 발굴에 대한 내용도 중요한 밸류업 재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