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홍제동 화재 참사 사건을 스크린에 옮겨 담은 영화 ‘소방관’이 오는 4일 개봉한다. 2020년 촬영을 마쳤지만 코로나 팬데믹과 주연 배우 곽도원의 음주운전 논란으로 올 연말에서야 관객을 만나게 됐다.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곽경택 감독은 “4년 동안 무거운 족쇄를 차고 다닌 느낌이었다. 이번 개봉이 그 족쇄를 푸는 날”이라며 “제가 아무리 열심히 찍는다 해도 항상 좋은 작품의 모습으로, 제가 원한 타이밍에 나오지 않는다는 걸 처음 경험했다. ‘소방관’은 저로 하여금 많이 반성하고 겸손하도록 만든 작품”이라고 말했다.
실화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만큼 각색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화재 구조 현장에서 소방관 6명이 순직하고 3명이 부상을 입었던 대형 참사였던 탓에, 이 영화가 누군가의 상처를 헤집게 될 수도 있어서다.
곽 감독은 “영화적으로 창작의 자유가 얼마나 주어진다고 믿어야 할지, 그 지점이 항상 딜레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사건의 뼈대만 가져오기로 했다. 영화로 인해 가슴 아플 수 있는 사람을 최대한 줄여보자는 마음이었다”며 “소방관들의 희생과 노력이 세대를 거쳐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인물의 서사는 상당수 재창조됐지만, 화재 오인 신고로 출동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출동 명령이 떨어져 선착대로 갈 수밖에 없었던 실제 상황은 영화에 그대로 담겼다.
영화는 홍제동 화재 참사 사건을 옮겨 담으며 소방관들의 노고와 소명 의식을 다루는 한편, 열악했던 당시 소방관들의 근무 환경도 조명했다. 그러면서도 특히 소방관들이 현장에 출동해서 겪는 어려움과 동료를 잃고 난 뒤에 겪는 트라우마(입스) 등을 섬세하게 다뤘다. 특히 신입 구조대원 철웅(주원)은 소방관이 되는 데 큰 이유가 됐던 친구의 죽음으로 트라우마를 겪으며 성장해나간다.
같은 날 만난 주원은 “분명 마음이 너무 안 좋을 텐데도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하고 있구나, 견뎌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철웅이를 연기하며 저도 입스라는 걸 간접적으로 느끼고 이해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방관’은 이런 소방관들의 일상과 어려움을 오히려 담담하게 그려낸다. 감정을 고조시키기보단 화재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냄으로써 소방관들이 느낄 두려움과 고통을 관객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래서 화재 장면의 85% 이상은 세트장에 실제로 불을 낸 뒤 촬영했다. 소방관들이 현장에서 겪는 연기는 빌라 화재 장면에, 화염과 붕괴는 상가 화재 장면에 담겼다.
주원은 “처음 화재 현장에 들어갈 때 ‘이거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더라. 덜 뜨겁게 하는 걸 몸에 발랐음에도 너무 뜨거웠다”며 “눈앞에서 큰불을 보니까 금방이라도 나한테 올 것 같아 멍해지더라. 그래서 오히려 내가 화재 현장에 신입 소방관으로 들어갔을 때의 모습처럼 자연스러운 연기가 가능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저는 촬영하면서 ‘나는 이 일을 못 하겠다’ 싶더라. 하지만 그분들은 생각하지 않고 들어간다고 했다. 이건 ‘대단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한다. 정말 멋진 사람들이라 느꼈다”고 덧붙였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