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사표 내지 말라는 상 같아… 아이티 품고 씨 뿌릴 것”

입력 2024-12-03 03:06
김혜련 아이티 선교사가 지난 9월 이른바 ‘쓰레기 마을’로 알려진 아이티 시티슬레이 트루지에에서 아이들과 셀카를 찍고 있다. 김혜련 선교사 제공

김혜련(58) 아이티 선교사가 4일 스크랜튼상 시상대에 오른다. 스크랜튼상은 이화학당 설립자인 메리 스크랜튼(1832~1909)과 그의 아들 윌리엄 스크랜튼(1856~1922) 선교사의 정신을 따라 살아가는 이화여대 동문을 격려하기 위해 2022년 제정된 상이다. 한국에선 주요 정당의 정책전문위원으로, 유엔에선 여성정책담당자로 일한 김 선교사는 2013년부터 아이티 고아와 과부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김 선교사의 도움으로 심장병 수술을 받은 아이티 아이들만 지난달까지 100명이다.

“아이티 선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 같아요. 12년을 선교했는데 선교지는 여전히 그대로예요. 이곳 사람들은 부두교를 믿으면서 서로 싸우고 죽여요. 총을 든 무장갱단은 세를 불려가고 있고요. 최근엔 150명을 산 채로 죽였습니다. 여전히 아이들은 심장병과 영양실조로 사망하고 있고요.”

지난달 29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 선교사는 “빈곤 문제가 해결되길 12년간 기도했는데 상황이 나아지긴커녕 악화하는 걸 보면서 회의감이 절로 든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스크랜튼 상을 통해 부르심에 대한 확증을 얻었다”며 “스크랜튼 선교사처럼 절망하지 말고 계속 아이티를 품으라는 주님의 메시지 같다. 하나님께 사표를 내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선교사는 “이화학당이 지금의 이화여대와 이화여고, 이화외고로 열매 맺은 걸 스크랜튼 선교사는 보지 못했다”며 “결과는 주님께 맡기고 씨앗을 뿌리는 게 선교사의 삶 같다”고 고백했다. 이어 “새삼 돌이켜 보니 스크랜튼 선교사의 치료하고 가르치고 전하는 사역을 아이티에서 똑같이 하고 있다”며 “그의 행적을 따라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난 스크랜튼 선교사의 열매”라고 말했다.

김 선교사는 이번 상금 전액을 아이티 빈곤 지역 아이들의 한 달 점심 식비로 쓸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선교사는 2013년부터 교육·구호 사역을 펼치고 있다. 유엔이 지정한 ‘10대 위험 지역’으로 꼽힌 시티슬레이 트루지에에선 아가페 유치원·초등학교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시티슬레이는 아이티의 수도에서 발생한 모든 쓰레기가 모이는 곳으로 이른바 ‘쓰레기 마을’로 불린다.

스크랜튼상 시상식은 4일 오후 6시 서울 강남구 유나이티드문화재단에서 진행된다. 김 선교사는 “아이티가 사회적·영적으로 회복될 수 있도록 믿음의 경주를 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이현성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