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내년 1월 20일 벌어질 일들

입력 2024-12-03 00:33

트럼프 공언 행정명령 40여개 임기 첫날 대거 서명해 추진
‘미국 우선주의’ 환호 받아도 결국 글로벌 리더십 시대 종언
힘 과시하며 비용 분담 늘리고 북한과 군축협상 가능성 높아

2025년 1월 20일 정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의회의사당 앞에서 취임선서와 함께 제47대 미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다. 취임식을 마친 그는 곧장 오벌오피스로 가 조 바이든 행정부의 국경 개방정책을 모조리 폐지하고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불법이민자 추방 행정명령에 서명한다. 곧바로 주요 교역국인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수입하는 모든 제품에 25% 관세를 물리고, 모든 중국산 제품에 10% 추가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한다. 비판적 인종이론을 가르치는 학교에 연방정부 지원을 중단하고 여성 스포츠계에서 성전환 선수를 추방하며 미성년자의 성전환 수술을 금지하는 행정명령도 내린다. 전임 행정부가 철회했던 세계보건기구(WHO) 탈퇴, 주요 무슬림국가 국민 입국금지, 파리기후협정 탈퇴, 정책 입안과 관련된 공무원의 법적 보호 박탈 등도 임기 첫날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포함된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트럼프식 국정운영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내년 1월 20일 백악관 재입성 당일 트럼프가 서명할 수많은 행정명령 중 일부다. 대선 기간 그가 취임 첫날 사인하겠다고 공언해온 행정명령은 40개가 넘는다. 그가 첫날 서명할 행정명령 중 상당수는 국내법에 위배되거나 즉각적인 실행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행정명령은 일시적이나마 효력 발휘가 가능하고, 법 해석 역시 트럼프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뤄질 수도 있다.

트럼프 재집권 인선의 특징은 충성파다. ‘미국 우선주의’와 ‘마가(MAGA)’를 강력히 밀어붙일 측근들을 전면에 배치했다. 트럼프는 백악관 정책고문 격인 ‘차르’직을 활용해 측근들을 요직에 등용하고 있다. 의회 인준이 필요 없어 정부 출범과 동시에 일을 시작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니키 헤일리, 마이크 폼페이오 등 트럼프 1기 시절 과격한 정책 결정을 제어했던 ‘어른들의 축’은 사라졌다. 빈자리는 크리스티 놈, 톰 호먼, 스티브 밀러 등 국경 봉쇄 및 이민자 추방에 앞장설 사람들로 채워졌다. 외교안보 분야도 대중 강경파 마코 루비오, 마이크 왈츠 등이 포진했다. 트럼프의 ‘리벤지팀’ 진용도 갖춰졌다.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과 팸 본디 법무부 장관 지명자가 대대적인 복수 작전을 이끌 예정이다. 최우선 복수 대상은 법무부와 수사당국이다. 자신의 1기 정책 수행에 걸림돌로 여겨졌던 딥스테이트(기득권 관료집단)도 숙청 대상이다.

연방정부 축소와 백악관으로의 권력 집중은 일론 머스크가 맡는다. 머스크는 400개가 넘는 연방기관을 99개로 줄이고, 연방정부 직원을 절반 이상 해고해도 되며, 연방정부 예산의 3분의 1가량인 2조 달러 이상을 삭감할 수 있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다.

트럼프의 이 같은 정책은 국내 지지자들에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희망을 주겠지만 대외적으로는 고립주의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뉴욕타임스 외교안보 대기자 데이비드 생어는 “트럼프의 대선 승리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리더십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고 했다. 미국이 주도적 리더십을 발휘해 국제질서를 관리하는 ‘국제주의’는 사라지고, 이제 미국도 철저히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세계를 맞게 된 것이다.

트럼프는 안팎으로 많은 저항을 겪었던 1기 행정부 때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생각이 강하다. 2기 행정부는 동맹과 파트너들에게는 더 많은 비용을 분담토록 할 것이고 경쟁자들에겐 최대치의 양보를 종용할 것이다. 미국이 자신의 힘을 더욱 과시하면서 이익을 극대화하면 할수록 현재 혼돈 속에 빠진 국제질서는 더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의 귀환은 국제 통상환경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한층 증폭됨을 의미한다. 외교안보 분야도 마찬가지다. 트럼프에게 한반도 문제는 현재 우선순위에서 밀리지만 임기 후반 외교적 성과를 위해 북한과 군축협상에 나설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가 선호하는 톱다운식, 일대일 담판이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작용한다면 한반도 비핵화 의제는 영원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우리 정부, 국회, 기업들은 내년 1월 20일부터 펼쳐질 좌충우돌, 각자도생의 시대에 직면해 있다. 이런 때일수록 기업은 기술 및 산업 경쟁력을 높여야 하고 정부의 전략적인 지원 역시 필수적이다. 국회 역할 역시 말할 것도 없다. 안전벨트를 바짝 매고 만반의 채비를 갖춰야 한다.

남혁상 편집국 부국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