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권력까지 움켜쥔 초일류 갑부
예산 절감·공무원 감축 선언했지만
사업 대부분 정부와 이해관계 얽혀
공정하게 ‘효율’ 추구할지 미지수
예산 절감·공무원 감축 선언했지만
사업 대부분 정부와 이해관계 얽혀
공정하게 ‘효율’ 추구할지 미지수
세계 최고의 부자, 세계 최강국 대통령의 ‘1호 친구(first buddy)’, 온라인 추종자 2억여명.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돈과 권력, 인기를 한 손에 거머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이다. 전기차, 우주 발사체 산업 등으로 세계 초일류 갑부가 된 머스크는 올해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한배에 올라타면서 최고 정치 권력까지 움켜쥐게 됐다.
트럼프는 머스크에게 전무후무할 ‘정부효율부(DOGE)’라는 조직을 맡겼다. 사업가 출신 정치인 비벡 라마스와미와 공동 수장 체제지만 힘은 머스크에게 쏠려 있다. 트럼프는 DOGE를 “우리 시대의 맨해튼 프로젝트”라고 표현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인류 최초로 핵무기를 개발한 프로젝트만큼 혁신적인 성과를 낼 것이라는 기대다. 머스크의 임기는 2026년 7월 4일까지다. 핵무기 같은 그의 ‘효율부’가 미국 정부를 고칠 것인지, 아니면 망칠 것인지는 아직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머스크는 일단 예산 절감을 1차 목표로 삼고 있다. 백악관 관리예산처와 협력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DOGE는 최근 소셜미디어 엑스에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프로젝트’를 비판하는 글을 게시했다. 2008년 사업 시작 당시 예상 비용은 330억 달러였지만, 현재 예산이 885억 달러에서 1279억 달러까지 늘어났으며 아직 이마저도 완전히 설계되지 못했다는 내용이다. 또 다른 게시물에선 인구 조사를 홍보하는 슈퍼볼 광고에 250만 달러가 쓰였다는 비판도 올라왔다. 머스크는 이런저런 예산을 줄이면 연방 정부 예산(2024년 약 6조7500억 달러)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2조 달러 삭감이 가능하다고 주장해 왔다. 그의 예산 삭감 주장은 좌파 정치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까지 칭찬할 정도다.
다만 대통령이 예산안을 제출해도 연방 예산의 총액과 유형을 결정하는 것은 의회 권한이다. 공화당이 상하원 다수당이 되면서 상원에선 DOGE를 지원하는 코커스가, 하원에선 DOGE 소위원회가 구성된 것은 머스크에게 힘이 된다. 하지만 의회 논의가 머스크의 생각대로 속도를 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상원 DOGE 코커스 소속 의원 중에서 연방 예산을 담당하는 세출위원회에 소속된 의원은 한 명도 없다.
머스크는 규제 축소에 비례해 연방 공무원 수를 대폭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월스트리트저널 기고에서 “감축할 연방 직원의 수는 무효화되는 규제의 수에 비례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그동안 그가 지목하거나 비판한 부처는 국방부와 교육부, 국세청과 소비자금융보호국(CFPB) 등이다.
머스크는 트위터(엑스의 전신)를 인수한 뒤 8000명에 달하던 직원을 1500명 수준까지 감축한 ‘실적’이 있다. 하지만 자신이 소유한 민간 기업 직원이 아닌 공무원을 이렇게 해고하기는 어렵다. 머스크는 조기 퇴직에 대한 성과급을 주는 것으로 퇴직을 촉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로이터통신은 “연방 공무원 노조는 이미 일자리를 보호하고 워싱턴 외부로 부서를 이전하려는 시도에 도전하기 위해 법적 옵션을 모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공무원 감축의 예산 절감 효과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우파 싱크탱크 맨해튼 연구소의 브라이언 리들 선임연구원에 따르면 연방 정부는 군인을 제외한 연방 직원의 급여와 복리 후생에 연간 3050억 달러를 지출하는데, 이는 연방 예산의 약 4% 수준에 불과하다. 연방 공무원의 25%를 해고해도 연방 지출은 1% 정도만 절약할 수 있는 셈이다. 정부의 민주적 운영에 효율만을 강조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효율’만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머스크를 풍자하는 칼럼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 알렉산드라 페트리는 머스크 1인칭 시점으로 작성한 칼럼에서 “나, 머스크는 추수감사절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며 “추수감사절에 만나야 하는 사촌이 너무 많다. 사촌 수를 80% 이상 줄이겠다”고 적었다. 머스크가 트위터 직원 80%를 감원한 것을 비꼰 것이다.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가 머스크와 공공성을 대표하는 정부의 이해 충돌이다. 뉴욕타임스는 머스크의 거미줄처럼 얽힌 사업을 분석하며 “머스크의 회사는 지난해 17개 연방 기관과 약 100건의 계약을 통해 30억 달러를 약속받았다”고 전했다. 머스크의 스페이스X는 사실상 미 항공우주국(NASA)의 로켓 발사 일정을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국방부도 대부분의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리기 위해 머스크에게 의존하고 있다. 머스크의 사업은 연방 정부로부터 규제도 받아야 한다. 이미 테슬라는 안전성으로, 스페이스X는 환경 피해 문제로 최소 20건 이상의 조사 대상이 된 상태다. 이렇게 미국 정부와 복잡한 계약과 규제로 얽혀 있는 머스크가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공정하게 정부의 ‘효율’을 추구할지는 미지수다.
머스크가 특히 백악관 관리예산처와 협력하겠다고 밝힌 대목은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예산처가 감독하는 일부 규정은 머스크가 지배하는 회사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머스크가 예산처의 의제 조정을 돕는 것은 무수한 이해 상충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