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에 지갑 닫히니… 랜드마크 문 닫을 위기

입력 2024-12-01 18:49
1일 서울 강남구 씨티빌딩 일대. 강남역의 랜드마크 격인 메가박스 강남대로점이 있던 자리에는 보드게임 카페가 들어섰다. 메가박스 간판의 글씨가 흐릿하게 남아 있다.

1일 서울 강남역과 신논현역 사이 강남대로변 씨티빌딩. 건물 앞 옥외광고판에는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강남역의 오랜 랜드마크였던 메가박스 강남대로점을 떠올리는 이들이 있겠지만 메가박스는 그곳에 없다. 그 자리에는 보드게임 카페가 들어섰고, 주말 오후인데도 씨티빌딩은 다소 한산한 모습이었다.

자신을 강남 토박이라고 밝힌 직장인 유모(32)씨는 “평소 자주 가던 극장이었는데 아쉽다”며 “늘 사람들로 붐비던 곳이었는데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고 말했다. 메가박스 강남대로점은 수익성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지난 4월 문을 닫았다.

지역 문화를 대표하던 곳이자 ‘만남의 장소’로 불렸던 랜드마크가 위기를 겪고 있다. 길어지는 불황 탓이다. 메가박스 강남대로점뿐 아니다.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도 상징적인 장소를 잃게 된다. 현대백화점 디큐브시티가 내년 6월 추억 속으로 사라질 예정이다.

주민들은 “구로구 유일의 백화점이자 랜드마크 시설을 포기할 수 없다”며 오피스 시설로 용도 변경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디큐브시티 단지 곳곳에는 항의성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고, 주민들이 시위를 하기도 했다.

랜드마크가 사라지는 것은 상권의 하향세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날 강남역 일대에서는 활기를 잃은 상권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화장품 가게와 의류 매장으로 북적였던 지난날과 다른 모습이었다. ‘임대문의’라고 적힌 딱지가 상가 하나 건너 하나꼴로 붙어 있었다. 3층 이상부터는 성형외과나 피부과 간판으로 빼곡했다.


랜드마크가 사라지는 것은 상권 쇠락으로 이어지곤 한다. 유동인구 감소가 상권 내 소상공인 매출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발 불황으로 명동의 K뷰티 로드숍이 잇따라 떠났을 때 명동 상권도 줄줄이 무너졌다. 2021년 1분기 명동 중대형 상가(3층 이상) 공실률은 38.4%로, 전국 평균(13.0%)의 세 배에 달했다.

팬데믹을 넘어서니 고물가 시대가 닥쳤다. 현 시점 랜드마크가 사라지는 핵심 원인으로는 고물가 영향으로 길어진 소비 침체가 꼽힌다. 유동 인구를 끌어모으는 몸집 큰 브랜드마저 버티지 못하며 상권의 위기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통계청 산업활동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 신고를 한 자영업자는 98만6487명이었다. 2006년 관련 통계 집계 이후 역대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폐업률은 10%에 달했다.

산업 트렌드가 빠르게 바뀌는 것도 랜드마크의 쇠락 원인으로 지목된다. 서울 동대문구 패션타운은 온라인 소비 증가와 ‘알테쉬’로 불리는 중국 이커머스 기업의 초저가 공세로 벼랑 끝에 몰렸다. 서울시 상권분석 서비스에 따르면 2분기 기준 2020년 12632개였던 서울 중구 관광특구 내 의류 소매점은 올해(9886개) 1만개 선마저 깨졌다. 지난 3월 말 기준 동대문 패션타운 내 일부 상가시설 공실률은 90% 가까이 치솟았다.


비수도권은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다. 2021년 폐업 전까지 ‘대백’으로 불리던 대구의 랜드마크 대구백화점은 주인을 찾지 못했다. 공개매각 절차를 밟기로 했다. 빅3 백화점의 지방 폐업도 줄을 잇는다. 지난해 신세계 강남점은 연 매출 3조1025억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였지만 롯데백화점 마산점의 매출은 전년보다 1.6% 감소한 740억원에 불과해 지난 6월 폐점을 결정했다. 1997년 11월 개점 이후 2015년 7월 롯데로 바뀌기 전까지 18년간 전국에서 유일무이한 대우백화점이었기에 아쉬운 반응이 더해졌다.

1991년 문을 연 해변 테라스 문화의 원조 격인 부산 레스토랑 ‘게스후’도 비싼 임대료를 못 견디고 폐업을 결정했다. 대전 중구 중심가에서 1996년 문을 연 계룡문고도 29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지난 9월 영업을 종료했다.

글·사진=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