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시스템 오류

입력 2024-12-02 00:34

우리나라는 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다. 법과 제도의 체계가 꽤나 단단하게 잡혀 있다.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들, 이를테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나 고위 공무원 같은 이들이 운용을 매끄럽게 못 하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기본적인 시스템 자체는 견고하게 맞물려 있다. 그렇게 우리나라는 어떻게든 매일매일 굴러가고 있다. 큰 그림에서는 그렇다. 멀찍이 떨어져서 보면 얼핏 무리 없이 착착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시스템에는 언제나 오류가 발생하게 마련이다.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면 잘 짜인 체계에도 숭숭 구멍이 뚫려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구멍에 빠지게 된다. 갑작스럽게 생긴 싱크홀처럼 누군가에게 그 구멍은 ‘사고’가 되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사방이 막힌 듯 보이는 곳에서 ‘빠져나갈 틈’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시스템은 판단의 근거를 제시해주지만 실체가 없는 감정 같은 것은 배제된다. 무자비한 측면이 있다. 시스템을 굴려 가는 사람들이 법과 제도의 틀에서 사고하고 판단하다 보면 개개인의 사연과 사정은 시스템상 입력값 자체가 될 수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치명적인 어려움이 별문제 아닌 것처럼 치부되는 일도 흔하다.

지난 8월 인천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 수사 결과도 견고한 시스템의 ‘구멍’을 확인시켜줬다. 경찰이 4개월 가까이 광범위한 수사를 벌였으나 화재의 원인을 찾지 못했다. 화재의 시작으로 지목된 메르세데스벤츠의 전기차가 뼈대만 남고 전부 타버렸으니 원인 규명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전망 그대로 마침표를 찍었다.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결과이기는 했다. 하지만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고 해서 결과를 받아들이는 게 수월한 것은 아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일말의 기대감이 사라진 것이니 더 답답한 노릇일 테다. 피해 입주민들은 “벤츠에 면책권을 준 것 아니냐”며 반발했다. 발화점이 된 차량의 제작사인 벤츠가 법적 책임을 비껴간 것에 대해 납득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세부적인 원인은 못 찾아냈더라도 벤츠 전기차에서 불이 시작된 것을 CCTV로 보고 또 본 입주민들로서는 선뜻 수용하기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 커다란 구멍에 빠진 기분이 들 것이다. 완성차의 결함인지, 배터리 셀 제조사의 잘못인지 확인이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벤츠도 배터리 셀 제조기업인 파라시스도 책임으로부터는 벗어나게 됐다.

명명백백 대규모 사고가 일어났는데 책임져야 할 이가 한 명도 없을 수는 없다. 우리의 시스템은 그런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경찰은 화재를 제때 감지하지 못한 소방안전 관리자, 화재 발생 시 대응 교육이나 훈련을 하지 않은 아파트 관리소장 등 4명을 과실치상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 작동을 정지시키면서 화재를 확산시킨 혐의다.

화재를 감지하는 것도, 그 후 스프링클러가 작동되는 것도 시스템의 영역이다. 왜 스프링클러를 멈췄는지, 화재 감지기의 오작동 여부를 먼저 확인하려고 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는데 스프링클러가 가동됐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을 고려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그런 사정은 안전불감증으로 여겨질 뿐이다.

이제 이 사고의 국면은 보험회사의 손해사정으로 넘어가게 됐다. 보험사의 시스템이 본격적으로 작동할 전망이다. 견고한 시스템이 언제나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가르고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개개인을 배제한 사회 체계, 그 자체가 오류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개운치 않은 중간 결말이다.

문수정 산업2부 차장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