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脫) 탄소에 나선 국제 사회의 가장 큰 난제는 전력 다음으로 탄소 배출이 많은 스코프1(Scope1·산업 공정)이다. 전력은 재생에너지나 수소, 원자력과 같은 대체재가 명확하지만 산업 공정은 사정이 다르다. 가격 경쟁력을 포기하고 고비용 탈탄소 생산 구조로 바꾸는 일에 선뜻 나설 민간 기업은 찾기 힘들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경쟁력을 잃지 않는 수준에서 산업 공정을 바꿀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국 주도의 ‘무탄소에너지(CFE) 이니셔티브’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대 산업 공정은 화석 연료를 매개로 발달해 왔다. 탄소 배출을 피할 수 없으며, 철강이 대표적이다. 국내 철강 주요 3사인 포스코와 현대제철, 동국홀딩스의 지난해 기준 탄소 배출량 중 95.0%는 산업 공정에서 나온다. 나머지 5.0%가 화석연료로 생산한 전력 사용 시 배출되는 스코프2(Scope2·전력 사용)에 해당한다. 중국 바오스틸 등 주요 글로벌 기업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1일 무탄소(CF)연합에 따르면 국내외 주요 철강 기업들의 지난해 탄소 배출량 중 산업 공정 비중은 94.9%에 달했다.
철강만의 문제가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탄소 배출량 중 산업 공정 배출량 비중은 지난해 기준 각각 71.9%, 68.1%다. 식각·증착 등 내부 공정에서 탄소가 배출된다. 석유화학 산업도 비슷하다. 국가온실가스정보센터에 따르면 최신 자료인 2020년 기준 석유화학 산업 탄소 배출량의 76.2%를 자체 연료 연소를 포함한 산업 공정이 차지했다.
이에 유럽연합(EU)은 제도 개선을 표방하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도입했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CBAM은 산업 공정 배출량을 계량해 EU 역내에서 생산하는 제품보다 배출량이 많을 경우 그만큼 CBAM 인증서를 사도록 하는 제도다. 철강 등 6개 품목을 대상으로 2026년부터 본격 시행한다. 다만 CBAM은 반도체 등을 제외하고 EU가 강점을 지닌 품목으로만 제재 대상을 국한해 비관세 장벽이 돼버렸다. 게다가 철강의 경우 석탄으로 코크스를 생산해 탄소가 배출되는 고로 공정을 뺐다는 지적도 있다. 이회성 CF연합 회장은 “핵심 공정인 고로를 제외한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간 차원의 움직임도 ‘반쪽짜리’로 평가받는다. 재생에너지 100% 사용(RE100)이나 구글 주도의 ‘24/7 CFE’ 캠페인 모두 전력 사용 부문에 국한돼 있다.
때문에 CFE 이니셔티브처럼 산업 공정에서 기업들이 줄인 배출량을 실질적으로 계산할 ‘표준 마련’이라는 대안이 주목받고 있다. CFE 이니셔티브는 규제가 아닌 탄소 감축 인증으로 기업의 탄소 배출 저감을 독려할 근거를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내년 상반기 중 철강·반도체·석유화학 부문 기준 마련을 목표로 삼았다. 이 회장은 “국제 사회의 ‘룰’을 만드는 게 첫발”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