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이얏!”
하얀 도복에 정갈하게 맨 검은 띠. 4열 종대로 가지런히 선 희끗희끗한 머리 위로 우렁찬 기합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구령에 맞춰 주먹을 뻗고 발차기를 하는 몸짓마다 힘이 가득 실려 있었다. 익숙하게 품새를 소화하고 제 자리로 돌아오는 곧은 등 뒤로, 도복에 새겨진 ‘할머니 태권도 시범단’이라는 글자가 선명히 빛났다.
지난달 26일 인천 국도태권도장에서 할머니 태권도 시범단이 정기 훈련을 가졌다.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시범단은 주 2회 2시간씩 도장에 모여 몸을 풀고 품새 태극장을 익힌다. 품새뿐 아니라 기공체조와 격파를 연마하며 매년 각종 대회에서 시범 활동을 보이기도 한다.
구성원들의 평균 연령은 70세로 모두 ‘노인’에 해당한다. 1984년 한국 최초의 실버태권도 시범단으로 창립할 때만 해도 여성들로만 꾸려져 아직 ‘할머니 태권도 시범단’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지만 최근엔 남성 회원도 가입해 활동 중이다.
올해로 태권도 경력 20년 차인 윤경숙(75)씨는 딸의 추천을 받고 태권도를 시작했다. 윤씨는 “처음 시작할 때는 허리가 너무 아파서 입원까지 할 정도였는데 자세가 좋아지면서 이제는 허리가 하나도 아프지 않다”며 “앞으로도 계속 태권도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기순(75)씨는 “태권도를 하면 두뇌 훈련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짚었다. 박씨는 “품새 동작을 하나하나 외우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며 “근력 운동을 하면서 두뇌 운동도 같이 해주는 셈”이라고 웃어 보였다.
잔병치레는 물론이고 넘어지는 일도 거의 없다. 김영범(70)씨는 “나이가 들수록 하체가 부실해지는데 태권도를 하면 균형 감각은 걱정 안 해도 된다”며 “노인들이 한 발로 버티면서 서 있는 게 쉽지 않은데 우리는 ‘학다리 서기’를 꾸준히 해서 문제없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병원에 가서 태권도를 한다고 하면 의사가 그래요. 그걸 왜 하냐고. 큰일 난다고 하지 말라는 거야. 태권도는 펄펄 날고 차고 격파하고 이런 것만 있는 줄 아시는 거지. 저희는 다치지 않는 범위에서 품새를 배워요. 도복 입고 몸을 움직이다 보면 정신도 맑아지고 얼마나 좋은지 몰라.”
전귀례(72)씨는 환갑이 지나고부터 태권도를 시작했다. 그전에도 시범단의 소식을 듣고 태권도를 배우고 싶었지만 “할머니가 웬 태권도를 하냐”는 편견 때문에 용기가 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직접 인터넷 검색 끝에 도장 문을 두드린 그는 이제 어엿한 태권도 10년 차 시범단 고참이 됐다.
전씨뿐 아니라 회원들 역시 태권도를 배우면서 숱한 편견을 겪어왔다. 태권도는 운동량이 많고 거친 투기 종목으로 노인들에게 위험하다는 인식이 퍼져있어서다. 2023 국민생활체육조사 보고서(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60대 이상의 태권도 참여율은 2.5%에 그쳤다. 가장 많은 노인 참여율을 나타낸 수영은 이보다 약 22배 많은 56.3%에 달했다.
40년간 시범단을 이끌어온 윤여호(77) 관장은 “태권도는 근력, 유산소, 균형, 유연성까지 기를 수 있는 종합 운동”이라며 “다치지 않는 선에서 노인들에게 맞는 움직임을 연구해 가르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참여율이 높지 않아 강사비, 대관비 등이 지원되지 않는 환경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에 대한 지자체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인천=이누리 기자